‘블랙홀’은 우주 어느 곳에 위치한 단순한 검은색 구멍이 아니다. 블랙홀은 ‘중력장이 극단적으로 강한 공간’이다. 쉽게 말해 엄청나게 강한 중력이 어떤 물체든 흡수해 버리는 곳이라는 얘기다. 물체의 속도 중 가장 빠르다는 빛도 이 공간을 지나치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 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빛이 없는 ‘블랙’ 홀이다.

먼 우주에 있어야 할 블랙홀이 2018년 3월 한국 땅에 떨어졌다. 3월26일 문재인 정부가 31년 만에 발의하는 개헌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개헌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현안을 단숨에 앗아버리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정부 개헌의 핵심인 토지공개념 ‘강화’부터가 문제다. 분명히 해둘게 있다. 일각에서 이번 개헌으로 토지공개념이 마치 새로 도입되는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미 우리 헌법에는 제23조 제2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와 제122조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 등의 공개념 조문이 있다. 이것을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크게 달라진 것 없어 보인다. 하지만, 추가된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이 어떤 판단 기준인지, 또 어디까지 한계를 두는 수사인지가 모호하다. 엄정하지 못한 기준은 정책 당국에 아무 때나 휘두를 수 있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를 쥐어 준 꼴이 된다.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으면 나중에 져야 할 책임도 없어진다.

토지공개념을 강화하려는 의도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통령과 정부는 토지공개념 강화를 통해 향후 시행하는 강력한 토지 규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피하려 한다. 실제 청와대는 3월21일 브리핑에서 “택지소유상한에관한법률은 위헌판결을, 토지초과이득세법은 헌법불합치판결을 받았고, 개발이익환수법은 끊임없이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개정 이유를 들었다. 노태우 정부가 1989년에 토지초과이득세, 개발이익환수제, 택지소유상한제 등 ‘토지공개념 3법’을 만들었지만 개발이익환수제만 남아 있다.

아무리 그래도 나라의 근간인 ‘헌법’을 이런 식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헌법에 위배되는 법을 만든 게 잘못이다. 그 법이 잘못됐다고 하니, 헌법을 뜯어 고쳐버리겠다는 오만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법을 통해 풀어야 할 조항을 헌법에 넣으면 시장 자율성도 침해된다.

이런 논란을 품은 대통령 개헌안은 외려 개헌 ‘중단’을 부르는 자충수가 될 것이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부터가 희박하다. 재적의원 가운데 3분의2(196석)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데, 야당이 반대한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당 소속 국회의원이 개헌안의 국회 표결에 참석만 해도 제명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개헌안이 발의되면 정국이 급랭한다. 또 차디찬 개헌 블랙홀에 빠진 한국 사회는 곳곳에서 갈등하고, 반목하며 신음할 것이다. 이런 식의 개헌이 청와대의 말처럼 과연 ‘국민의 명령’이고 ‘시대정신’인지 의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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