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목학회 TF팀은 현장방문 때
터널굴착 디지털시스템을 보고
세계에서 통할 것이라며 놀랐다
하지만 시공사는 무덤덤했다
신기술이 먹거리인 시대에
가진 기술을 널리 알려야 한다”

111년만에 찾아온 최고 온도가 연일 이어지던 8월 초에 대한토목학회 오피니언 전담팀(KSCE TF)이 대규모 터널공사 현장을 방문했다. 현장의 온도계는 섭씨 38도를 오르락내리락 했다. 뜨거운 찜통을 메고 한증막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뜨겁고 무더운 날씨였다. 2015년에 결성된 학회 TF 소속 위원은 필자를 제외하면 대부분 40대 초반의 교수와 건설 및 엔지니어링사 직원으로 구성된 소장파 그룹이다. 현장의 이슈를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해 학회의 의견으로 정리해 짧지만 영향력 있는 보고서를 수시로 발간하고 있다. 전담팀을 소장파로 구성한 이유는 건설에 대한 일방적 매도나 폄하에 대해 체계적으로 대응하자는 취지다. 국내에 극히 부족한 논객을 키워내자는 뜻을 담았다. 방학과 휴가 시즌을 이용해 현장을 방문한 것은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다.

현장 작업에 피해를 최소화시키기 위해 각자 교통편 이용은 물론 현안 이슈 중심으로 현장설명 시간을 최소화시키기로 했다. 방문진이 현장과 한국건설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도출하기 위해 최대한 객관적 입장을 취하자는 의견을 사전 논의했었다.

현장의 모습은 깨끗했고 또 터널입구에 설치된 실시간 모니터링 전자상황판이 눈길을 끌었다. 상황판에는 터널 속 작업 현황은 물론 작업장 내 공기 혼탁(미세먼지 및 산소 등) 정보, 발파 예정시간, 터널 작업구간에 실시간으로 진·출입하는 모든 사람의 실명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동시에 발파 예정시간이 분까지 표시돼 있었다. 작업 속도도 실시간으로 변하고 있었다. 터널 갱도에 들어가지 않고서도 근로자와 장비의 이동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건설현장이 디지털화 돼 있었다.

발주처는 물론 시공사도 자신들이 개발해 사용 중에 있는 현장종합정보시스템이 정보에서 디지털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해당 사업에서 발주처 감독관과 계약자가 협력해 터널 굴착작업을 완전히 디지털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음을 발견하면서 방문진도 놀랐다. 현장에 시범 적용하고 있는 시스템은 해당 발주처와 기업의 터널작업 개선에만 적용할 계획이었다. 범용화 시키면 전 세계 주요 터널사업에 적용 가능할 정도로 상품성이 커 보였다. 기술자의 자기만족을 넘어서서 글로벌 시장에 내놓을 건설의 디지털 상품화 가능성에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건설현장에서 발견한 고충은 최근에 이슈화된 문제와 유사했다. 터널작업이 40개월 이상 연속되기 때문에 작업 근로자와의 계약은 주58시간 근무를 전제로 월정액으로 연간계약을 했다. 7월부터 적용되기 시작한 주52시간 근무제한은 금년까지는 문제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연간으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내년 계약에서는 58시간이 52시간으로 줄면서 월정액이 약 10%정도 줄어드는 것을 근로자가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한때 조선족 근로자를 많이 활용했지만 지금은 제3국 인력만 활용하고 있다. 조선족이 제3국 인력보다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외국인근로자가 가장 큰 수혜를 보고 있음도 발견됐다. 터널공은 내국인근로자가 연간계약으로 활용하지만 작업이 불연속적인 콘크리트공종 관련 근로자는 공급량과 숙련도 모두에 문제가 크다는 점이 지적됐다. 일당은 높지만 작업일수 부족 때문에 별 의미가 없었다. 동시에 작업의 불연속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근로자의 잦은 이탈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방문진에 포함된 소장파 교수진은 건설현장의 작업환경이 건설공학과 학생들의 매력을 잃게 만든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마을과 격리된 작업환경이 청년의 눈에 부정적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완성된 모습을 먼저 보여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건설인 스스로가 건설에 대한 자긍심이 부족해 보였다. 학생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겠지만 필자는 다른 생각이다. 세계 최고 건설기업인 미국 벡텔사는 직원 채용 시 반드시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이 있다. 1977년에 완공한 알래스카 횡단 송유관 건설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다. 극한 온도와 바람에 맞서기 위해 두툼한 방한복, 그리고 모자를 쓴 얼굴 주위에 얼어붙은 고드름이 보이는 모습이다. 입사하려는 사람에게 “우리 기업은 사회와 인류의 복지를 위해 이 사람만큼 도전할 용기를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기업 스스로 건설에 대한 자긍심이 충만하다. 

국내 건설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크고 작은 기술 개선 사항을 외부에 공개하고 상품화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내부 만족에서 보유한 기술을 글로벌 시장에서 상품화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비록 완성되지 못했더라도 워낙 빠르게 변하는 현실에서 아이디어 자체가 상품화될 수 있는 게 요즘 세상이다. 기술의 상품화가 새로운 먹거리와 연결되는 세상이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 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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