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복합역사·놀이공간 공항 등
기술융합서 상품융합 시대로
건설시장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촉발하는 변화에
선제대응해야 생존할 수 있다”

국내는 제4차 산업혁명(4IR) 바람이 거세다. 독일과 미국에서 4IR을 해석하는 시각은 우리와 완전히 다르다. 독일은 첨단산업, 스마트 팩토리 등 주로 제조업 중심의 기술혁신이 초점이다. 미국은 정보와 지식혁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통점은 혁신(innovation)보다 혁명(revolution)에 더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우리 건설은 제4차 산업혁명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할까? 국내에서 4IR을 보는 눈은 극단적이다. 다보스포럼 의장의 마케팅 용어에 지나지 않는다는 부정적 시각에서부터 기존 정보화시대 연장이라는 주장과 드론과 IoT 등 정보통신기술(ICT)과의 융합이라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건설은 IT나 제조업과 다르기 때문에 4IR이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4IR에 대한 시각은 다를 수 있지만 변화의 속도와 크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변화를 무시하고 자기 길을 고수하는 집단, 변화에 저항하는 그룹, 변화에 선제 대응하는 그룹으로 나눠볼 수 있다. 

개인컴퓨터가 범용화되기 전 컴퓨터 거인 IBM의 저항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세계는 초대형컴퓨터 6대면 충분하다는 게 IBM 경영진의 판단이었다. 책상 위 컴퓨터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것이라 확신했다. 결과는 IBM이 PC시장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아날로그 카메라 필름의 절대강자였던 코닥의 몰락도 변화를 무시한 결과였다. 코닥은 필름을 대체하는 디지털기술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아날로그 필름을 버리기에 너무 아깝다는 판단 때문에 상품화를 미뤘다. 패자로 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1955년부터 57년 동안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중 사라진 기업 비중이 87%였다. 그러나 2000년 이후 15년 동안 사라진 업체 비중이 52%였다. 기업의 부침이 최근 들어 극심해지고 빨라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기업 가치로 4000억 달러 이상 기업은 생긴 지 25년 이하가 전부라고 한다.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네플릭스, 구글 등 소위 FAANG사다. 기업 가치가 2000억 달러 이상 기업에 랭크된 전통적인 회사는 125년 역사를 가진 GE와 코카콜라, 그리고 175년 된 P&G가 전부다. 최근 GE는 제조업이 아닌 디지털 사업으로 방향 전향을 선언했다. 세계 시장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확보한 MS사도 소프트웨어(SW) 판매에서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으로의 전향을 선언했다. 구글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자율주행 자동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글로벌 주자의 시장 경계선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눈을 국내로 돌려보자. 건설이 4IR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정부와 정보 산업체는 아직도 과거 프레임에 얽매여 있다. 대통령 공약에 통합정보시스템 구축도 포함돼 있다. 

애석하지만 통합정보시스템 구축은 완전히 과거 프레임이다. 분산된 정보를 한곳으로 모으기 위해 정보와 데이터의 표준화를 들고 나온다. 표준화 목적은 모든 정보와 데이터를 한곳에 모아 거대한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IoT 등 최근의 화두와는 거리가 멀다. 세계 정보나 운영체계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구글이나 MS의 인식은 다르다. 회사 자체에서 별도의 DB 구축의 필요성이 없다 주장한다.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클라우드 DB를 활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자체 내 DB가 있지만 굳이 모든 데이터를 자신이 가질 필요는 없다. 데이터 보유량보다 데이터 공급원을 찾아내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훨씬 강조한다.

국내 건설도 4IR 시대를 살아가는 전략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개별 기업이 각개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기에는 규모와 기술역량이 턱없이 모자란다. 단기간에 M&A 전략도 어렵다. 개인 무기로 거대한 함대와 겨뤄보겠다는 것은 운수에 기댄 객기에 불과하다. 함대와 대적하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이 아닌 연합군을 만들어야 한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어렵다는 것은 현재와 미래 생존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기술적 해석을 떠나 건설경제 측면에서 현재 나타나고 있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철도역은 이미 복합역사로 바뀌었다. 고속도로 휴게소가 주요한 수익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공항도 문화와 쇼핑, 그리고 놀이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초고층건물은 이미 수직 도시로 역할이 변했다. 도심지 오피스빌딩 1층 공간은 다양한 생활공간으로 채워졌다. 도로 위에 주상복합까지 등장할 예정이다. 동네마다 있는 동사무소 건물이 주민의 복합 문화공간으로 빠르게 변신 중이다. 

기술 융합에서 상품 융합시대로 진입했다. 전통적인 기술에 얽매여 첨단기술만을 주장하는 시대는 지났다. 급변하는 환경과 건설의 프로세스를 제대로 알고 있으면 승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스마트시티 시장이 IT기술의 놀이마당이라는 인식도 버려야 한다. 4IR이 촉발한 변화 흐름에 선제 대응해야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변했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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