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공공공사 거래제도는
발주자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정립된 기울어진 저울이다 
손실비용의 공감대가 있다면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 세울 책임은 
산업체가 공동대응할 수밖에 없다”

공기 지연 혹은 연장으로 인해 발생하는 간접비 지급 여부를 대법원이 최종 판결했다. 건설에서 시간을 줄이려면 더 많은 자원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에 직접비가 늘어나고 간접비는 줄어든다. 공기가 늘어나면 직접비는 고정이지만 간접비는 늘어난다. 이번 판결 논쟁의 핵심은 법리적 해석과 논리적 해석 차이다. 총괄계약에 명시된 공기보다 늘어났기 때문에 간접비는 당연히 늘어난다. 문제는 늘어난 간접비를 누가 지불 혹은 감내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석이다. 발생한 손실은 대법원이나 발주자, 그리고 산업체 모두가 인정한다. 법원은 총괄계약과 차수별 계약 관계를 인정하기보다 차수별 계약만이 유효하다는 해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원고인 산업체는 총괄계약에 명시된 계약 금액과 계약 공기를 동일 시 해석한다.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건설공사에 관한 도급계약의 원칙) 제②항에 계약 체결 시 도급금액과 공사기간 준수를 의무화해 놓았다. 발주자는 계약액을 초과해서 지불하지 않는다. 문제는 계약 공기다. 공기 지연 책임이 계약자에게 있으면 지체상금을 지불한다. 공기 연장 혹은 지연 책임이 발주자에게 있을 경우에 대한 처리 조항이 계약일반조건이나 특수조건에 명시돼 있지 않다. 계약자 책임은 명시해 놓았지만 발주자 책임이 없다. 저울의 추가 발주자에게 유리하도록 규정된 것이다.

사업에서 손실이 발생할 경우 계약자의 책임이 아니면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에 해당한다.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라면 대법원의 판결과는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 법리적 해석을 떠나 계약당사자 간 손실 논쟁이 발생할 경우 계약적인 해석이 어려우면 약자, 즉 계약자에게 유리하도록 판단하는 게 관례라고 한다. 1980년대 미국 벡텔사의 사내직원 교육교재에 나타난 내용이다. 대법원의 판결과는 반대 방향이다.

손실액이 발생한 사실은 발주자와 산업체가 모두 인지한다. 발주자는 법원의 판결을 중시해 간접비 지불을 기피한다. 인정은 해도 감사원 감사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산업체, 특히 중소건설업체는 거의 ‘멘붕’ 상황이다. 공공공사가 총괄계약에 명시된 공기대로 끝난 사례가 거의 없다. 공공공사 총괄계약에서 통상적으로 공기는 30~40개월이 기본이다. 실제 공기는 70~90개월, 심지어는 120개월까지 늘어난다. 예산부족이 주원인이다. 간접비로 인한 손실은 일과성으로 넘길 수 없는 문제다. 민간공사 혹은 국제 건설시장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사태가 국내 공공공사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6조는 건설공사의 예정가격을 원가산정방식으로 강제화 시켰다. 인건비나 자재비, 기계경비 등 직접비는 품셈이나 실적단가를 적용한다. 간접비와 이윤은 직접비용의 몇 %로 산정하도록 규정했다. 국계법 제15조(대가의 지급)는 검사 조서 작성 후 대가를 지급하도록 돼 있다. 추정과 지불을 일치시켰다. 검사 조서는 직접비 대상이기 때문에 직접비가 발생하지 않으면 간접비 산정은 불가능하다. 건산법은 도급계약의 원칙에서 금액과 공기, 품질 준수를 의무화시켰다. 건산법 제40조(건설기술인의 배치)는 공사 기간 중 현장인력 배치를 의무화시켰다. 준공 시까지 인력을 유지해야 한다. 차수별 계약에 따라 완성된 시설물에 대한 품질 유지관리 책임도 명시해 놓았다. 간접비는 직접비와 무관하게 공기에 따라 발생하지만 지불 책임이 없다는 것은 법원의 해석이지 발주자의 인식은 다르다고 본다.

국내 공공공사의 거래제도 자체가 발주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정립된 기울어진 저울이다. 손실비용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면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 세울 책임은 산업체가 공동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단기 대응은 예정가격 산정과 무관하게 제안서 제출 시 간접비 지불 제안을 공기와 연동시켜 직접비 발생과 무관하게 청구할 수 있도록 국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공사계약일반조건에 손실비용에 대한 발주자의 책임을 삽입하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국내에만 존재하는 ‘장기계속비계약’제도를 없애는 것이다. 필자의 개인적 판단으로는 실적단가나 품셈제도 개선보다는 국제입찰에서와 같이 원가산정방식을 국계법에서 제외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 판단한다. 공기에 따른 간접비 보상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건산법에 있는 인력배치와 관련된 조항 폐지도 검토할 것을 권고한다.

명백하게 발생한 손실 비용을 놓고 벌이는 지불 책임 공방에서 현행 제도를 인정하는 상태로는 대법원의 판결을 뒤엎을 수는 없다. 개별 산업체보다는 협·단체 대표가 주도해 정부와 협상을 통해 해당 부처장의 재량으로 해결 가능한 것부터 처리하는 게 순리다. 재량권으로 해결 가능한 지침을 개정한 후 헌법소원도 가능하리라 본다. 법령 개정이 필요한 부문은 국회 내 해당 위원회와 협의회를 만들어 공동연구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이 해결책이다. 우리 속담 ‘답답한 사람이 우물판다’에서 답답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안다면 기울어진 저울을 바로 세울 책임이 누구인지가 명백해진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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