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바로미터인 ‘강남’에서 올해 정반대의 통계가 나왔다. 올해 빌딩 거래는 사상최대급으로 일어났고, 아파트 거래는 확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는 가격과 거래량이다. 강남 빌딩과 아파트 가격은 올해 모두 급등했지만 거래량은 영 딴판이다. 엄청나게 풀린 유동성이 가격을 올리고 거래를 키우는 게 당연하지만, 정부의 규제가 주택부문에만 치우쳤기 때문에 나오는 풍선효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매일경제신문이 올 들어 12월 중순까지 강남구에서 매매된 빌딩을 전수조사해보니 295건이 거래됐다. 지난해(205건)와 비교하면 44%나 급등한 수치다. 동별로는 대형 오피스 빌딩이 밀집한 역삼동이 82건으로 가장 많이 거래됐고, 신사동(37건)과 논현동(36건), 삼성동(32건), 대치동(30건), 개포동(20건), 청담동(19건), 일원동(16건), 도곡동(10건), 세곡동(7건), 자곡동(6건) 순이다. 올해 말까지 거래건수를 모두 합치면 300건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올해 강남구 아파트의 거래량은 작년에 비해 반토막났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12월11일까지 강남구 아파트는 3420건 거래돼 지난해(6838건)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서울 전체로 보더라도 지난해 총 7만9433건의 아파트 거래가 이뤄져, 지난해 9만9900건보다 20.5% 줄었다. 강남·서초·송파·강동 등 강남4구의 아파트 거래량은 1만4733건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전년동기대비 41.8% 감소한 것이다.

‘거래절벽’ 수준으로 아파트 거래가 줄어든 것은 감소 장소와 시기로 미뤄볼 때 정부의 규제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1~3월까지 1만건에 육박하거나 1만건을 훌쩍 넘겼던 거래건수는 4월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라는 규제 시행 후 확 꺾여 4~6월 월평균 거래건수는 5000건을 밑돌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여의도·용산 통개발 발언 직후인 8월에는 연중 최고치인 1만5092건이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9·13 부동산 대책 발표 후 시장은 급격히 냉각돼 10월 3014건, 11월 963건만 거래가 이뤄졌고, 12월엔 11일까지 100건이 거래돼 하루 평균 10건을 채우지 못했다.

이런 양극단의 데이터는 정부가 억지로 주택수요를 누르고 있다는 가설에 힘을 싣는다. 종부세 폭탄을 때려 다주택자가 아파트를 팔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겠다지만, 실제 나오는 매물은 거의 없다. 양도세 중과와 8년 임대사업자 혜택으로 집을 팔 수 없는 엇갈린 규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조금 더 버티면 결국 다시 오를 것이라는 장기적 관점의 ‘강남불패’ 믿음도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현금부자들이 강남 아파트 대신 강남 꼬마빌딩을 최적의 투자처로 여기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중에 돈이 엄청나게 풀려있다는 점도 정부정책의 풍선효과를 부추기고 있다.

실제 이번 전수조사에서 강남빌딩을 사들이는 ‘큰손’들은 은행대출을 거의 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일어난 295건의 거래 중 등기부등본상 근저당권이 전혀 설정되지 않은 거래는 70건(23.7%)이나 됐다. 강남빌딩을 사는 4명 중 1명은 전액 현금을 내고 빌딩을 사들인다는 얘기다. 대출을 받아도 매매가의 50% 이내인 경우가 82건(27.7%)을 차지했다.

수요를 누른다는 것은 거대한 돈의 흐름을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꽉 눌린 수요는 ‘박원순 여의도·용산 발언’ 때처럼 작은 불꽃에도 폭발할 수 있다. 재건축을 막고 대출을 옥죄는 규제보다 좋은 입지에 저렴하고 살기좋은 아파트를 대규모로 짓는 공급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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