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자가 분쟁입증 책임을 지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무용지물이다
 환경분쟁처럼 입증책임을 바꾸면
 불공정거래가 줄어들 것이므로
 정부·국회는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업종별 대기업군을 중심으로 하도급, 재하도급의 형태를 띤 선단식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구조 하에서는 필연적으로 사슬관계의 하층부를 이루고 있는 하도급업체 등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 가치를 인정받아야 경제체질이 건실해지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가 성장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이룬 성과물의 경우 대기업군에 집중되고 경제성장의 한 축인 중소기업 등 하도급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이는 건설업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하도급업체는 날이 갈수록 종합건설업체에 더욱 예속화되면서 영세해질 뿐만 아니라 거의 수탈에 가까운 횡포를 겪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부도 이를 잘 알기에 공정거래위원회,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를 중심으로 연일 하도급업체 보호에 관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도급 부당감액·기술유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노무비·임차료 등 경비 증가에 따른 대금증액요청 등에 이어 최근에는 건설산업기본법을 개정해 하도급공사 계약자료 공개 의무화, 공공공사의 대금지급시스템 의무화를 추진하고 여기에 더해 매해 공정위의 하도급거래 서면 실태조사를 실시해 하도급거래질서의 공정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같은 정책들이 크게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공정위 등 정부에서는 각종 정책시행과 실태조사 결과 이전보다 하도급거래관행이 많이 개선됐다고 발표한다. 거의 매년 실시하고 매년 개선됐다고 한다면 그 세월에 비춰 볼 때 주위에 하도급대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업체가 거의 없어야 할 터인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하도급거래와 관련해 아무리 좋은 정책, 제도가 있어도 하도급업체가 공사분에 상응한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하도급거래와 관련한 분쟁은 대부분 설계서·시방서 등 도면의 변경지시 여부, 현장에서의 작업지시 유무, 공사물량 추가투입 또는 투입량 여부, 공기지연 책임 등으로 모두 대금 증액과 관계가 있다.

이러한 분쟁 발생시 하도급업자가 그 사실의 존재에 대해 입증을 해야 한다. 하지만 열악한 지위에 있는 하도급업자로서는 원사업자가 제공하지도 않는 도면변경, 작업지시 등과 관련한 자료를 확보할 능력도 없고 거부할 수는 더더구나 없으므로 일단은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후일 그로 인해 증액된 대금을 청구하면 원사업자로부터 거부당하기 십상이고, 이를 입증할 자료도 변변치 못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실정이다.

공정위의 ‘2017년 하도급거래공정화 종합대책’을 보면 최근 5년간 하도급법위반업체에 대해 공정위의 제재는 93.4%가 경고나 단순 시정명령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제재한 수치가 그렇다는 것이고 하도급업자가 신고한 사건의 상당수는 입증자료의 미제출 또는 부실로 무혐의 등으로 처리하는 것을 감안해 볼 때 하도급거래질서의 공정화를 기함에 있어 공정위가 얼마나 무력한지가 드러나고 있다.

공정위가 하도급거래질서를 바로 잡는데 입증자료의 미비 또는 부족으로 인해 조치에 한계를 느낀다면, 방법은 두 가지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적극적으로 자료를 수집할 능력이 있는 기관에게 그 권한을 넘기거나 아니면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이다. 입증책임 전환은 하도급분쟁시 원도급업자가 하도급업자의 주장사실이 부당하다는 점을 입증하게 하는 것이다. 자금력과 인력이 상대적으로 우월하고 조직체계를 갖추고 시스템에 의해 업무를 수행하는 원사업자가 분쟁사항에 관해 입증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입증책임의 전환을 언급하면, 전가의 보도처럼 등장하는 반대론이 있다. 민사분쟁에 있어서는 이를 주장하는 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 민사소송의 대원칙이라는 것이다. 행정권을 발동해야 하는 공정위마저도 이 원칙에 따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큰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원칙은 의료, 환경 등 전문분야로서 사회공익적 측면에서 주장자에게만 입증책임을 맡겨놓을 경우 피해구제가 원활치 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큰 비용을 수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거나 공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보일 경우, 입법이나 판결로서 입증책임을 전환시키는 경우가 있고 서서히 그 범위도 넓어져가는 경향이 있다.

사적거래에 형벌권을 직접 개입시키겠다고까지 나가는 형국에 민사상 전통적인 입증책임론을 변경 내지 완화시키는 방안이야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전문성과 공익적 필요가 적은 것도 아니라고 보이므로 정치권과 정부 관계 기관에서는 적극적으로 그 도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종합법률사무소 공정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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