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주기식 도시 개발은 
      시간, 기억, 역사를 지우는 괴물이다 
      시간이 사라진 도시 공간은 
      유령화 된다는 사실을 
      효율성 중심의 정책가나 정치가는 
      잘 모르거나 애써 외면한다
                              지금 그것이 다시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을 싸고 재연되고 있다”

청계천 개발은 성공실패 여부를 떠나 보여주기 정책의 대표적 사례다. 짧은 시간에 웅장한 경관을 보여준 탓에 정책의 입안자는 대통령 자리까지 꿰찼다. 지자체 곳곳에서 천변을 챙기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그런 효력 때문 아닐까 싶다. 그런데 보여주기 정책은 정치가나 정책가에겐 득이 될 만큼 효율적일지 몰라도 사회 전체로 보아선 독소적 요소가 많아 피해야 할 일이다. 보여주기 이면에는 속절없이 스러지는 소중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스러진 것들 중엔 긴 시간이 지나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 줄 보석 같은 존재가 부지기수다. 도시 재개발과 같은 보여주기 정책은 일시적으로 몇몇 개인에겐 효율적일 순 있다. 하지만 긴 시간 공동체적 시각으로 보아선 파괴적인 작업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다.

보여주기식 도시 개발은 시간, 기억, 역사를 지우는 괴물이다. 오순도순 살았던 집터와 발걸음이 만들어낸 골목길을 일거에 지우는 흔적 파괴자다. 몇 십 년을 지켜 사람들의 빈속을 달래주던 먹거리 집도, 골목 초입에서 온갖 부식 배급을 담당하던 구멍가게도 단 며칠이면 사라진다. 기억 지우기 사업은 기억을 잃은 도시를 만들고 그로 인해 도시는 뜨내기만 사는 늘 낯선 공간이 되고 만다. 시간이 사라진 도시 공간은 유령화된다는 사실을 효율성 중심의 정책가나 정치가는 잘 알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한다.

도시는 애초 누군가의 입안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이긴 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입안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형성된 생태계도 실존한다. 방앗간이 있으면 옆에 떡집이 생기고, 이어 잔치와 관련된 옷집이 생기는 것은 도시 계획과 무관하게 이뤄지는 생태계 법칙이다. 도시의 재개발은 그 생태계를 일시에 허무는 파괴자 역할을 종종 해낸다. 그래서 인간이 자발적으로 이어온 문화적 소통을 허무는 반인간적 정책이 되기도 한다. 청계천이 지금과 같이 보기 좋게 된 이면에는 천변에 이어져 오던 생태계 실종의 아픔이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만 지금 보기 좋음에 그 신음은 늘 가리어져 있을 뿐이다.

보여주고자 하는 정책가나 정치가의 생명은 길지 않은 탓에 보여주기식 정책은 언제든 새롭게 보여주기로 반복된다. 이명박 식의 보여주기는 곧 오세훈 식의 보여주기로 이어진 것이 그 예다. 도시 안에 사람이 산다는 생각 대신 도시는 고쳐야 하는 곳이라며 정책 대상으로 사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도시 재개발이 비난에 막히자 도시 재생이라 포장을 바꾸어서라도 보여주기를 계속하기도 한다. 보여주어야 함을 도시정책가, 정치가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끊어내기를 주저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보여주기 도시 정책이 다시 서울 한복판에서 재연되는 모양이다. 세운상가 주변의 재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에 세운상가를 지을 당시의 기록을 보면 서울 도심의 남북을 잇는 거대한 건물을 세우며 근대 한국을 보여주려 욕망했다 한다. 이후에 여러 정책 입안자들이 그 보여주기를 연장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더 잘 보여주기를 꿈꿨다. 그 건물을 싹 지워버리고 완전 새로운 건물로 채우려 했던 시장도 있었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며 고쳐서 잘 사용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그 어느 쪽이든 손을 대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물러나진 않았다. 하지만 대체로 재생 정책 쪽의 손을 들어주며 논란은 수면 아래도 가라앉았다. 

그런데 세운상가를 고쳐 쓰자던 쪽에서 그 주변을 밀어버리려는 통에 소란스러워지고 있다. 청계천변, 을지로의 공구상가를 밀어내는 공사를 반대하는 쪽에서 내놓은 말은 오랜 동안의 도시 재개발 반대 논리와 일치한다. 시간을 지우는 일은 물론이고 긴 세월 구축된 생태계를 완전히 밀어붙이는 비인간적 정책이며, 일단 손대고 본다는 도시 정책의 연속이라는 비판이다. 세운상가를 살리자면서 세운상가를 떠받치는 공구 메이커 단지를 지우는 일을 두고 머리만 남기고 팔다리를 잘라내는 우둔한 정책이라 비판한다.

‘청계천을지로 보존연대’에서 내놓은 성명서에는 보여주기 정책의 상징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과 동시에 벌어졌던 용산 참사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경고가 떡하니 등장했다. 정책, 정치의 욕망으로 사람의 삶을 망가트린 뒤 불행한 대가를 치루는 역사의 교훈을 외면하지 말라는 경고처럼 들린다. 도시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아는데 이리 긴 시간과 온갖 노력이 걸리는 것일까. 

사람, 도시, 정책 간 우선순위를 뒤집어 생각진 말아야겠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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