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타 면제 사업은 국가 균형발전 외에도
 단기 경기부양 목표도 있으므로
 정부는 떳떳함을 강조해야 한다
 또한 대규모 국책사업은 토지매입, 사업자 선정 등
 준비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려 올해 악화할 경제상황에서
 경기부양효과가 바로 나타날지 불확실해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1월, 24조1000억원 규모의 국책사업에 대해 예타를 면제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예타란 예비타당성조사의 줄임말로 통상 사업비 500억원 이상, 국가재정지원 규모 300억원 이상의 신규 공공투자사업에 대해 경제성, 정책성, 지역균형발전 등을 분석해 사업이 의미를 가지는 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한편 국가재정법 상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예타를 면제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

이번 발표된 사업들의 예타 면제 근거는 지역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라는 조건에 해당된다. 즉 사업이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시급성이 인정되기 때문에 예타를 면제한다는 것이다. 이번 예타 면제 사업의 내용을 보면 대부분 SOC(사회간접자본) 분야에 집중돼 있다. 즉 토목사업인 것이다.

이에 대해 경제성장을 건설투자에 의존하는 이러한 방식은 후진국형 발상이라고 비판하는 부류도 많다. 실제로 과거 정부들이 그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토건(土建)국가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토건은 지금도 많은 선진국들이 쓰고 있는 경기부양책이다. 미국의 트럼프노믹스(Trumpnomics)와 일본의 아베노믹스(Abenomics)의 중요한 축에 SOC 투자가 있다.

이번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 계획의 큰 방향은 옳다고 본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보다 당당한 자세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발표에서 그 취지를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장기적인 균형발전에 두었다는 점을 너무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과거 정부들의 경기부양용 토건사업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는 현 정부의 철학 때문일 것이라 추측된다. 그럴 필요는 없다. SOC 투자는 궁극적으로 미래 국가경쟁력의 확보나 균형발전이라는 목표를 가지지만 동시에 단기적인 경기부양이라는 목표도 분명 존재한다. 보다 떳떳할 필요가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책기조가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경직적 교조주의나 원리주의에 의미 없이 매몰되는 것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가지는 것이 바림직하다. 오히려 솔직하게 사업의 고용창출효과를 더 강조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비록 떠들기 좋아하는 세객들이나 고매한 척하는 학자들의 비난을 들을지 몰라도, 국민들은 그 비난이 합리적인 논거를 가지는 비판으로 인식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대안 없는 비판은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타이밍의 문제이다. 올해 효과를 내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다. 보통 대규모 국책사업은 시행계획, 규제검토, 토지매입, 사업자선정 등을 거쳐 착공에 들어가기까지 상당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과연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예타 면제 사업들 중 올해 안에 착공할 수 있는 것이 몇 개나 될까 의문이다. 이제 큰 그림을 그리는 계획이 발표됐을 뿐이다. 물론 정부는 명목상으로 이번 사업들이 경기부양 목적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작년보다 올해 경제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시각들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공공투자의 경기부양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가 올해가 아닐 것이라는 점은 아쉽다.

셋째, 지역별 안배를 벗어나 수개의 거대 사업군으로 압축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부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지리적 차원에서 국가균형발전은 필요한 아젠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간 나눠 먹기식의 사업 배분이라는 느낌은 지우기가 어렵다. 필자가 보기에도 어떤 사업은 전혀 경제적 타당성마저 없어 보인다. 

넷째, SOC의 질을 높이는 것보다 양적인 수준에 집착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국책사업이 가져야 할 최대 덕목은 사실 균형이 아니라 효율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가량인 약 2600만명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보면 수도권에 보다 많은 SOC투자가 집중됐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국가운영철학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부의 예타 면제 사업계획을 보면서 아쉬운 점은 많다. 그러나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다. 이번 계획이 현 정부의 가장 잘하는 정책이라 생각되고 그래서 꼭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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