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혁신은 매번 반복된다. 2016년 다보스포럼발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자동화,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은 불과 10년 전만 해도 낯선 단어들이었다.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변화의 속도와 크기는 10년 후는 고사하고 당장 내일이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하기도 힘들어졌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례도 곳곳에 감지된다. 국내법과 제도가 대표적이다. 국내법과 제도는 포지티브 방식이다. 아무리 유용한 기술이라도 법이 허용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다. 신기술 혹은 신제품을 시장에서 상품화시키려면 법과 제도에 들어가야 한다. 역대 정부가 일관되게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지만 어느 정부도 성공하지 못했다. 법과 제도에 대한 고수 세력 때문이다.

미국과 독일 등은 디지털 주도 혹은 제4차 산업 등을 내세우면서 과거 프레임인 아날로그 방식을 빠르게 혁파하고 있다. 변화가 일어날 경우 반응은 세 갈래로 나뉜다. 변화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자, 변화를 방관하는 자, 변화를 주도하거나 적극 대응하는 자이다. 원격진료를 거부하는 자, 스마트폰보다 아날로그 전화기를 고수하는 자, 그리고 얼리어답터로 분류되는 자는 새 스마트폰이 나올 때마다 교체한다.

한국 건설에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가 닥쳤다. 건설엔지니어링은 조만간 데이터기반 설계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면과 시방서가 필요 없는 시대로 바뀐다. 시공의 완전한 자동화까지는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3D 프린팅 기술이 범용화 되면 데이터기반 설계가 시공 시장까지 장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엔지니어링 기술의 발전 과정은 수작업에서 2D 캐드로, 2D에서 3D로, 3D는 다시 BIM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데이터기반 설계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계별 발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시공 기술의 발전 과정은 수작업에서 도구 사용, 도구 사용에서 기계 및 장비 사용, 사전 제작 및 모듈공법, 다음은 자동화기술 확대에서 3D 프린팅 기술로 넘어가면 데이터기반 설계와 시공이 일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예측이 빗나갈 수는 없다. 예측은 분명하지만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속도이지 기술의 문제는 아니다.

변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5000년 이상 계산 도구로 사용돼 왔던 주판이 계산기로 빠르게 대체됐다. 계산기는 다시 컴퓨터로, 컴퓨터에서 다시 스마트폰으로 대체됐다. 변화를 거부하거나 저항하는 사례도 여러 번 경험했다. 원자력발전소 엔지니어링 초기에는 도면 작성은 완전한 수작업이었다. 미국에서 범용화 되기 시작했던 2D 캐드를 도입할 계획을 세우자 기술자와 기능인 모두가 반대했다. 검증되지 않았고 수작업보다 더 나은 결과를 확신하기 힘들다는 것이 이유였다. 전동타자기가 범용화 되고 곧바로 PC와 워드프로세스로 대체하기로 하자 기술자와 타자수들이 워드프로세스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문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2D는 예상보다 빨리 확산됐다. 공종별 간섭 체크와 시공 순서 수립에 도움을 줬던 플라스틱 모델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3D 캐드로 교체하기로 하자 플라스틱 모델의 편의성을 내세우면서 극심한 반대 의견이 많았다. 그들을 무마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제한 사용을 결정하기도 했다. 3D 도면과 공정계획과 물량 산정을 연계시킬 기술개발(지금의 BIM보다 훨씬 앞섬) 전략을 수립하자 신기루 발상이라면서 강한 반대도 있었다. 2010년에는 국내 원전에 데이터기반 설계엔지니어링 기술 개발 전략을 수립하자 거의 모든 기술자들이 반대했다.

국내 시장이 혁신적인 기술에 반대 기류가 강하지만 선진국 건설은 이미 빠른 속도로 새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미국 애플사의 신사옥 건설은 BIM기술을 전면 도입한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프랑스 남부에 진도율 60% 이상을 넘긴 국제핵융합시험로 건설현장은 변화관리를 위해 ‘IoT’ 기술을 도입해 올해부터 정상 가동에 돌입하는 대규모 플랜트 사업의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준공한 일본 이바라끼 축구전용 경기장 건설은 사전제작과 조립, 모듈공법을 도입해 현장 근로자 수를 80%까지 줄이는 사례를 만들었다. 한국 건설이 변화를 거부하거나 저항해도 글로벌 시장에는 혁신적인 기술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거부나 저항과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확산된다. 한국 건설에 주도권이 없다는 의미다. 거부와 저항의 종착역은 시장 퇴출이다. 시장은 있지만 지배 기술과 산업은 바뀔 수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빠른 속도로 적응하는 방법 외에 달리 길이 없다. 거부나 저항할 수 있는 권리는 시장과 기술을 주도할 때나 가능하다.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닌 선도 주자(first mover)가 돼야 하는 이유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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