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업상속공제라는 게 있다. 기업오너의 배우자와 자녀 등이 해당기업을 가업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상속가액 최대 500억원까지는 세금을 면제해 주는 제도다. 대상은 상속 직전 3개 연도 연평균 매출액이 3000억원 미만인 중소·중견기업이다. 피상속인(상속해주는 사람)은 해당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해야 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상속인(상속받은 사람)은 해당기업을 10년 이상 경영해야 한다. 또 기업용 자산을 80% 이상 유지해야 하고, 매년 평균 정규직 노동자 수를 기준고용인원의 80% 이상 유지해야 한다. 가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세금을 깎아줬으니 약속대로 기업을 계속 운영해 고용창출 등 사회에 기여해달라는 뜻이 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최고 50%다.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까지 더하면 상속액의 65%까지 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단 중소·중견기업 후계자들은 예외다. 가업상속공제 덕에 최대 500억원까지는 상속을 받아도 세금 한 푼을 안내도 된다. 이들이 실제 세금을 납부할 여력이 있는지 없는지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상당한 특혜다.

최고 65%가 되는 상속세를 법대로 다 내다보면 지분율이 뚝 떨어져 자녀가 기업을 이어가기 힘들다고 재계는 주장한다.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상속하면 지분이 쥐꼬리만큼으로 줄어든다는 주장도 편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동의할 수 없는 내용도 있다. 이 때문에 ‘100년을 갈 장수기업이 사라진다’는 주장이다. 또 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지 못해 ‘기업가정신’이 죽는다고도 한다.

이상하다. 자녀가 직접 경영을 하지 못하면 기업이 사라지는 것일까? 아버지가 세운 주식회사는 자녀들의 것일까?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질문 하나. 자녀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까. 자녀들은 아버지의 일을 진짜로 잇고 싶어 할까? 멀리 볼 필요도 없었다. 일곱살 아들에게 물어봤다. “너 기자 될 꺼니?” 아들이 말한다. “아니. 난 자동차 디자이너가 될 껀데”

소니, 파나소닉, BMW 등은 삼성, LG만큼 오래된 기업들이다. 하지만 이 기업은 창업자의 핏줄들이 직접 경영하지 않는다. 지분을 보유한 창업자 3,4세들은 사업을 잘 할 수 있는 전문경영인에게 기업을 맡기고 뒤로 빠져 있다. 그렇다고 기업을 내팽개친 것은 아니다. 이사회에서는 주주로서 제목소리를 낸다. 기업이 잘돼야 자신들의 배당수익이 커지고 보유주식의 가치도 커지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 중 상당수는 다른 사업을 한다. 예컨대 소니의 창업자 3세는 전자산업이 아닌 엔터테인먼트에 주로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재산을 물려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무작정 많은 재산을 물려준다고 자녀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 창업주인 쏘카의 이재웅 대표가 가업상속공제 요건완화에 대해 “혁신성장의 의지를 꺾은 일”이라며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에릭슨, 사브, 일렉트로룩스 등을 보유한 스웨덴 발렌베리가의 자녀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가야 하며, 발렌베리가가 아닌 회사에서 근무해 경험을 쌓아야만 기업을 승계할 자격이 주어진다. 창업주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상속재산을 몰아주며 기업을 무조건 승계하도록 하지 않는다. 그런 식의 지원으로는 기업가정신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요즘은 시중에서도 상속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있다. “대학은 책임지겠지만 그 이상은 알아서 하라”고 자녀들에게 말하는 부모들이 생각보다 많다. 고등학교까지 책임지는 서양부모들에게는 아직 못 미치지만 한국사회도 분명 변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 완화는 이런 흐름에도 맞아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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