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되는 한국경제의 거시지표가 좋지 않다.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기대비 마이너스 0.4%를 기록했고, 경상수지는 82개월 연속 흑자 행진이 끊겼다. 여기저기서 금융위기를 넘어서 외환위기급이라고 외쳐댄다. 한국경제는 정말 위기로 향해 가는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한국경제의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글로벌 무역분쟁이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멕시코, 캐나다, 유럽연합(EU)과도 관세전쟁을 불사하고 있다. 수출 중심의 한국으로서는 갑갑해진 상황. 수출은 지난해 말 이후 6개월 연속 감소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비중이 높았던 터라 반도체 단가가 하락하니 거시적 지표는 맥을 추기 어렵다. 글로벌경기가 얼어붙는데 해외 수주라고 잘될 리 없다. 독일, 일본 등도 마찬가지다. 그들 역시 플러스 성장이 쉽지 않다.

그러나 글로벌 무역분쟁은 영원히 갈 수 없다. 언젠가는 끝난다. 글로벌 무역 분쟁을 촉발시킨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정해져 있다. 내년은 미국 대선이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실력은 소낙비가 그쳤을 때 나온다. 비가 올 땐 모두가 몸을 피하지만 비가 그치고 난 뒤는 제각각이다. 푹 쉬면서 농기구를 잘 정비해 놨다면 해가 뜸과 동시에 밭을 갈러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술, 담배와 도박에 빠져 살았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어려울 때 누가 차분히 혁신을 준비했느냐에 따라 향후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경제의 진짜 위기는 지금의 나쁜 거시지표가 아닌 ‘혁신에 대한 불안과 저항’이다. 택시업계가 반발하면서 ‘카카오 카풀’은 중단됐고 ‘타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형타워크레인(무인)에 반대하며 기존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반대 이유로 관련법이 없는 불법이라거나 면허받기가 쉬워 사고율이 높다는 이유를 편다. 하지만 두 사건의 기저에는 ‘기술혁신에 대한 불안감’이 깔려있다. 소형타워크레인은 높은 효율성을 앞세워 기존 시장을 급격히 대치했다.

기술혁신은 필연적으로 기존 일자리를 파괴한다. 산업재편은 곧 일자리 재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산업혁명 때도 그랬고, 정보혁명 때도 그랬다. 4차 산업혁명 때는 그 충격이 더할 수 있다. 기술혁신은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적 부를 확대시키지만 세부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경쟁에서 밀린 기존 산업 종사자들은 ‘루저’가 되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인 탄탄한 사회안전망이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부족하다. 일자리를 잃은 근로자가 낙오돼 버릴 때 ‘해고는 살인’이 된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기술혁신에 저항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사이 다른 경쟁자가 우리를 추월해 간다.

이때 필요한 것인 정부의 중재력이다. 변화가 필요한 자와 변화를 거부하는 자 사이에서 조율을 해줄 가장 큰 힘은 공공이 갖고 있다. 돌아보건데 사회갈등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정부 중 하나는 참여정부였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이라크파병, 항운노조상용화, 경주 방폐장 건설, KTX 천성산터널 공사 등 수많은 난제가 있었지만 상당수는 해결됐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중요성을 설명하고 정치적 책임을 떠안겠다며 국민을 설득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참여정부 철학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사태가 나면 일단 봉합하고 뒤로 미루는 모양새가 너무 많다. 갈등에 더 민감해진 한국 사회에서 국정을 조심스럽게 운영하기 위한 것이라 이해하면서도 이러다 행여 타이밍을 놓치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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