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제) 보복이 좀 잦아드나 싶더니 이번엔 일본이 한국에 대한 무역제재에 나서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에 대해 전범기업들이 손해배상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불씨가 됐다. 

수출로 먹고 살아온 일본이 특정국가에 선제 무역제재를 가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란제재와 같이 정치·군사적인 이슈로 국제제재에 동참한 적은 있어도 현안해결을 위해 자발적으로 경제적 제재 카드를 꺼내든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일본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 3개 핵심소재에 이어 다른 품목에 대해서도 수출규제에 나설 참이다. 8월1일부터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하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일본의 주요 첨단재료를 수입해 올 때 건건이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자동차, 화학, 건설 분야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

일본이 작심하고 덤벼들면 우리 기업들의 피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핵심소재, 부품을 일본에서 공급받는 구조여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생각해보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소재, 부품 산업과 기초기술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정작 투자를 꺼렸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었다. 이참에 국산화율을 높인다면 반전의 기회가 된다. 주식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소재관련 기업의 주가가 연일 상승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실력이 없어서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돈이 안  되기 때문에 안 만든다는 것을 시장은 안다. 일본이 탄탄하게 부품소재를 공급해주는 상황에서는 경쟁력이 없었다는 얘기다. 착한 집주인을 만나서는 셋방살이를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수출국가 일본에 대해서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부품무기화를 들고 나오면서 그 같은 신뢰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됐다. 중국처럼 비경제적인 이유로 언제든 통상제재를 꺼내들 수 있다는 것을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도 알게 됐다. 

하지만 아베 내각의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생각보다 한국이, 한국기업이 커버린 탓이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1988년 일본의 GDP는 3조720억 달러로 한국(1960억 달러)보다 15.6배나 컸다. 2008년 일본 5조380억 달러, 한국 1조20억 달러로 양국간 격차가 5.0배로 축소되더니 지난해에는 3.1배(일본 4조9710억 달러, 한국 1조6190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1362달러(27위)로 일본 3만9286달러(24위)에 목전까지 쫓아왔다.

수출의 일본쏠림도 크게 줄었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를 보면 30년전 19.8%에 달했던 대일본 수출 비중은 올 상반기에는 5.3%까지 축소됐다. 

10년 전이었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 대해 경제제재를 내리기는 일본도 버겁다. 한일 간 경제구조는 과거처럼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상당부분 수평적, 보완적 구조로 바뀐 탓이다. 너무나 빠른 변화를 아베 총리가 체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일본이 때리고 한국이 버티는 사이 휘파람부는 곳은 중국이다. 그래서 아베 내각이 하수라는 거다.

일본은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을 금지하는 나라 중 유일하게 한국만 제소했다. 기저에는 한국을 만만하게 보는 심리가 있었다는 것도 부인하기 힘들다. 건설 산업에서도 일본에 기술종속된 부분이 적잖이 있다. 사는 놈이 안 산다는 것도 아니고 파는 놈이 안 팔겠다는 식의 협박을 받아서는 업계 경쟁력이 지속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