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공공계약의 입찰절차와 관련한 가처분에서 입찰자가 승소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법원은 공공계약을 사법상 계약으로 보고 발주처에 상당한 재량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입찰취소의 효력을 정지하고, 입찰자에게 ‘기술제안적격자’ 지위를 인정한 결정이 나왔습니다.

상징성 등이 필요하거나 높은 기술이 필요한 공사는 ‘기술제안입찰 방식’으로 낙찰자를 선정할 수 있습니다(국가계약법 시행령 제8장). 조달청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신축공사에 대한 입찰을 실시하면서 실시설계 기술제안입찰방식을 적용했습니다.

기술제안점수가 80%에 달하고, 입찰공고에 예정가격을 초과하는 경우를 명시했습니다. 입찰에서 기술제안서 평가까지 마쳤고, 가격개찰 및 입찰금액 평가를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사원에서 예가 초과를 문제 삼았습니다. 예가 작성 면제가 명시되지 않는 한, 모든 입찰은 예가를 초과한 자를 낙찰자로 선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따른 통보가 있자 조달청은 입찰공고 자체를 취소해버렸습니다.

기술제안서 평가에서 1위를 한 입찰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입찰공고 취소는 무효이고, 자신이 기술제안적격자임을 정하는 가처분신청을 했습니다. 한국은행 별관공사 등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있어 언론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제50부)은 예가가 곧 입찰금액 상한이라는 공식이 당연한 것은 아니고, 예가 이하로 낙찰자를 선정하도록 한 규정(국가계약법 제42조 제1항)이 모든 국가계약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특히 실시설계 기술제안입찰에서는 예가를 입찰금액 한계로 하는 명시적 규정이 없습니다. 법원은 위 규정이 없는 것은 소관부처가 예가와 예산상 총공사금액 중 어느 것을 한계로 할 지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이를 입찰자의 불이익으로 돌려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법원은 공공계약은 사법상 계약이므로, 입찰공고에서 예가 초과가능성을 명시했다면 그에 따라 입찰을 진행하는 것이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지 않는다며 감사원과 다른 판단을 했습니다. 입찰공고를 믿고 참가한 입찰자의 신뢰와 계약체결에 대한 정당한 기대를 보호하기 위해 법원은 입찰취소공고의 효력을 정지했습니다. 그리고 입찰자에 대해 기술제안적격자 지위를 인정, 종전 입찰공고에 따라 가격개찰 및 입찰금액 평가를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예가의 의미를 밝혔다는 점과 입찰이 중도에 취소됐을 때에도 입찰자의 권리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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