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촉발된 부산의 222세대 ‘명품 테라스형 아파트’의 부실시공과 입주 하자 문제가 큰 충격을 주었다. 86대 1의 경쟁률에서 당첨됐던 입주 예정자들의 70%가 4500만원 이상의 계약금을 포기하면서 계약을 해지한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공동주택의 입주 하자보수 갈등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건설업계의 악성종양으로 자라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부실시공과 하자 발생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부실시공에 의해 하자가 발생할 수는 있지만 모든 하자가 부실시공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적법하고 성실하게 시공했다 하더라도 본의 아니게 예상치 못한 불확실성이나 착오가 발생할 수도 있다. 더욱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부실시공과 간단한 수선으로 해결되는 과실 하자는 구분해 살펴야 한다.

경제적 거래 대상이 되는 상품의 품질을 확인하는 방식에는 견본, 규격, 성능 점검, 명세서, 상표, 표준품 등이 있는데 공동주택은 견본을 기준으로 매매가 이뤄지고 품질을 확인한다. 사전 양해나 조건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주할 주택이 견본주택과 질적으로 다르면 하자가 있는 주택이다.

하자보수의 요인은 발생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하자가 발생했다는 것만으로 부실시공으로 정죄해서는 안 된다. 부실시공은 다분히 의도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다. 사용 자재의 수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춤으로써 경제적 초과이익을 노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도적 하자는 부실시공으로 분류돼야 하며 책임 부담을 가중시켜야 한다.

하지만 비의도적으로 유발된 단순 하자의 경우에는 부실시공으로 압박할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문제해결에 초점을 두는 것이 효율적이다. 공급자(시행사, 시공사)와 수요자가 하자의 상황을 주어진 여건으로 인정하고 차선책을 서로 협의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편익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설기업, 특히 입주자의 오감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미장, 도색, 타일, 창호, 마감재 등 전문 업종 기업의 인식과 태도가 우선적으로 전환돼야 한다. 입주자는 건설 전문가는 아니지만 소비 전문가이다. 소비자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예민한 감각은 건설기업의 일시적 이해타산의 셈법으로는 감지해내기 어렵다.

만일 건설기업이 공동주택의 하자보수를 간과한다면 향후 기업이 지불해야 할 대가는 이전에 비해 훨씬 가중될 것이다. 디지털 네트워크 사회에서 소비자의 모니터링이 강화돼 하자보수 분쟁을 유발시킨 시행사와 시공사에 대한 정보는 급속도로 유통될 것이기 때문이다. 폐업하고 새 이름으로 개업한다 하더라도 은폐한 이력을 소비자가 ‘털기’란 식은 죽 먹기다.

물론 까다로운 입주자의 우격다짐으로 준공 검사가 지연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그 입주자를 고객으로 생각하는 경영 마인드를 가진다면 감리업체뿐만 아니라 제3자 점검업체를 동원해 고객을 설득함으로써 기업과 사업 브랜드의 가치를 홍보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분쟁 해결 능력의 부족은 기업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기업경영 환경에는 24시간 불확실성과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으므로 유연한 태도와 전략적 선택이 필수적이다. 하자보수의 추가비용을 손실로만 간주하는 것은 건설 산업의 고질적인 한탕주의의 연장선일 뿐이다. 오히려 더 큰 수익 창출의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하자보수를 기업 마케팅과 소비자 만족도를 향상시키는 역발상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정당한 하자보수는 시행사, 시공사, 소비자 모두에게 긍정적 효과를 창출할 수도 있다. 건설기업은 하자를 축소하거나 숨기려 하지 말고 인정하고 노출시킴으로써 이후 공사에서는 재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긴장감과 노하우를 가지게 될 것이다.

건설 시설물의 하자와 제조 상품의 불량품은 결이 다르다. 제조 상품은 반복 실험을 통해서 안정적으로 제조될 수 있는 반면에 시설물은 매번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생산된다. 제조업 불량품은 폐기돼야 하지만 시설물의 하자는 보수하면 된다. 신뢰 회복과 부활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이왕이면 제대로 보수해서 일시적으로 실추된 신뢰를 지속적으로 높여 나아가는 것이 기업과 산업이 발전하는 길이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쇄신하지 못하고 지자체의 공공 감리단의 참여가 확대된다면 기업은 경제적 이익과 사회적 신뢰를 모두 구걸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될 수도 있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하기보다는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는 사소취대(捨小取大)가 경영자의 지혜로운 판단이다.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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