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경제가 좋다 또는 나쁘다는 것에 대한 판단은 보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경제학적으로는 이를 판단하는 일정한 기준이 있다. 통상 경제 상황의 좋고 나쁨이 반복된다는 의미로 ‘경기순환’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경기순환은 경제학자마다 명칭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회복, 호황, 후퇴, 침체의 네 가지 국면으로 구분된다. 이 네 국면이 순서대로 반복·이행되는 것이 경기순환이다. 이에 따르면 침체의 다음 국면은 회복이고, 침체가 회복으로 전환되는 분기점을 우리는 경기 저점이라고 한다.

바로 최근 대두되는 경기 바닥론이라는 것이 한국 경제가 경기 저점을 통과했거나 통과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경기가 바닥을 찍었으니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어찌 보면 긍정적인 전망이다.

경기 바닥론은 근거가 없지는 않다. 경기순환 국면을 판단하는 데 주로 사용하는 지표가 경제성장률과 경기동행지수순환변동치(경기동행지수는 생산, 소매판매 등 실제 경기와 같이 움직이는 7개 구성지표를 종합한 지수이며, 순환변동치란 동행종합지수에서 추세변동분을 제거한 지표)인데, 실제로 2019년 2분기를 기점으로 이 두 지표가 상승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따르면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에 드디어 침체 국면을 벗어나 회복 국면으로 진입할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런데 바닥을 찍었다고 회복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침체 국면 그리고 경기 저점 다음은 회복 국면인 것은 맞다. 그런데, 드문 일이지만 회복되는 듯이 올라가다가 다시 내려가는 페이크(fake)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우리는 더블딥(double dip)이라고 한다.

한국 경제가 가장 최근에 경험한 더블딥은 2013년 3월에서 2015년 6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를 기준으로 제11순환기가 시작되는 2013년 3월의 저점(99.7포인트(p))에서 이후 경기가 상승세를 보였으나, 만 1년 만인 2014년 3월(100.6p)에 단기 고점을 형성하고 2015년 6월(99.6p)까지 경기가 다시 하강하는 국면을 경험한 바 있다. 경제성장률 기준으로는 2013년 1분기 전년동기대비 2.3%에서 2013년 4분기 3.9%를 거쳐 2015년 2분기 2.0%로 하락했다. 당시 바닥을 찍고 잘 올라가던 경기가 다시 가라앉았던 원인은 2014년 봄의 세월호 참사로 인한 소비심리 악화가 실제 소비와 투자의 내수 침체로 이어졌고, 중국 리스크 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우리 수출이 어려움을 겪었던 데에 있다.

지금 경기 바닥론과 더블딥을 식별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바닥을 찍고 올라갈 때의 속도가 내려올 때의 속도보다 느리다면 의심을 해봐야 한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회복 추세가 지나치게 미약하다면 더블딥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불행히도 최근 경제지표의 모습들은 그래 보인다. 우선 경제성장률은 2018년 2.7%에서 2019년에는 1.9% 내외 수준으로 0.8%p가 급락했다. 그러나 2020년에는 국내외 연구기관을 통틀어 가장 좋게 보는 숫자는 2.3%이다. 2019년과 2020년 경제성장률의 차이 0.4%p는 내려갈 때 속도의 절반에 그친다. 그리고 지금 한국 경제의 주변 여건들은 과거 더블딥의 경험과 많이 닮아 있다. 대내외 리스크 요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점증되는 가운데, 최근에는 중국 경제에 위기의 징후가 강해지고 있다. 그래서 수출은 1년 넘게 마이너스가 나오고 있다. 가계와 기업의 민간 경제심리는 크게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의 침체가 너무 장기화돼 경기 반등의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경기 하방 리스크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지난 2분기 이후의 미약한 회복세가 더블딥이 아니라 본격적인 경기 회복세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 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말 그대로 ‘경기 부양’이어야 한다. 특히, 지금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재정지출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앙정부는 물론이고 지자체의 예산은 2020년 상반기 중 집행률을 높여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경기 회복 속도가 미약하거나 더블딥 국면이 전개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에, 2020년 경영 전략의 무게 중심을 ‘비상 경영’에 두어야 한다. 특히, 불확실한 경영 여건들이 전개될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는 자체 능력을 키워야 한다. 나아가 새로운 사업, 그것도 대규모 투자가 동반되는 사업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끝으로 경기 회복이 온다는 보장이 없듯이 더블딥이 온다는 보장도 없다. 앞으로의 경기 방향성은 현재 정해진 바가 없다. 그래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장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전지적 혜안과 유연한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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