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30일 독일 수도인 베를린의 의회는 향후 5년간 주택 임대료 인상을 금지하는 ‘임대료 동결법’을 통과시켰다. 이미 올리기로 합의했더라도 2014년 이후 지어진 집이라면 작년 6월 정해진 임대료를 5년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코로나19로 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이 집 월세를 못 내겠다고 집단 시위에 나섰다. 이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끊겨 당장 가진 돈이 없다”고 항변했다.

두 사례를 보면서 몇 가지를 깨달았다. 우선 대한민국 사회는 주택이든 상가든 임대료에 관한 한 임대인 우위 시장인 데 반해 외국은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라 임차인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한다는 점이었다. 다음으로는 그럼 우리 사회는 임대료 동결은 고사하고 공정한 임대료 산정을 위해 무슨 노력을 해 왔는가라는 자책에 가까운 의문이 들었다.

산업화 후 경제가 성장을 구가할 때 임대료 인하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주택 임대인들은 전세보증금에 약간의 월세를 받았다. 그리고 보증금을 활용해 새로운 주택을 구입해 돈을 벌었다. 임차인들은 전세로 살다가 보증금에 번 돈을 보태 집을 샀다. 상가도 마찬가지였다. 주인은 상가를 빌려줘 임대료로 돈을 벌고, 임차인은 장사를 해 역시 돈을 버는 선순환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특히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생계원인 상가에서 그런 현상이 뚜렷하다.

하지만 워낙 굳건해 깨질 것 같지 않던 임대료 시장이 플레이어들의 인식 변화로 예전과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계속 약자일 것만 같던 임차인들이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고, 임대인들도 이에 응하는 양상이 자주 포착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서울시는 상가 임대료 부담 완화를 위한 고민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임대인의 선의에 의지하는 ‘착한 임대인’에서 나아가 ‘임대료 감액청구’ 등 임대료 산정에 임차인의 의중을 더 반영하는 사회적 논의에 불을 지피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시, 중소상인협회, 가맹점주협회와 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모인 자리에서 임대료 감액조정 활성화 등 상가 임대료 부담을 줄이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영업 환경은 극도로 악화됐지만 임대료 인하와 동결에 동참한 임대인은 전국에서 3400여명에 불과하다. 이는 임대료는 사실상 그대로인데, 임차인들의 수입은 급감해 납부 여력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 일각에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임대료에 대한 공적 개입을 화제로 꺼내며 공감대를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실제 영국에서는 수도인 런던에서 ‘임대료 사정관 제도’로 지방정부가 임대료 산정에 개입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10년 전만 해도 임대료를 깎아 달라는 말을 임차인이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 분위기기 많이 바뀌었다”며 “‘공정한 임대료’라는 개념이 더 공론화돼야 한다”고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종식 후 ‘뉴노멀’에서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임대료’가 시대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가는 시기였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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