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독일이 주변 예상보다 더 고전한 데는 사연이 있었다.

동독은 공산국가 중에서는 경제와 기술 수준이 가장 높고 복지체제도 잘 되어 있는 나라로 알려져 왔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동독의 1989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703달러였고 이전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02%였다. 같은 기간 서독의 2.66%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하지만 통일 이후 실상을 보니 동독 경제는 통계보다 훨씬 썩어 있었다. 한 푼도 없다던 외채가 200억 달러에 달해 매년 총 외화 수입의 62%를 외채이자 지불에 써야 했다. 동독의 경제상황은 통계를 통해 서독이 예상한 수치의 30% 수준에 불과했다.

통계는 모든 것의 근본이다. 통계를 기초로 정책을 만들고, 미래상도 전망한다. 이런 말이 있다. “망하는 나라, 불투명한 정부일수록 통계를 ‘마사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부동산 시장에선 때아닌 통계 논란이 뜨겁다. 한국감정원이 주로 발표하는 ‘국가 공인통계’가 시장 상황과 동떨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탓에 집값 통계의 신뢰도를 둘러싼 공방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정부 부처 국정감사에서도 뜨겁게 벌어졌다.

최근 경제정책 수장은 물론 주택정책 주무장관이 한목소리로 “부동산 거래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3개월간 실거래 가격은 꾸준히 오른 것으로 나타난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에 신고된 서울 지역 대표 아파트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2020년 6월 대비 3분기 실거래 가격이 여전히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25개구 지역 대표 아파트들의 6월 평균 실거래가 대비 최근(10월)까지 상승률은 11.2%에 달했다.

그동안 국가기관인 한국감정원의 시세에 대한 공격은 계속됐다. KB부동산 시세 등 민간기관 통계와 괴리가 심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일각에선 감정원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이 전국 9400가구를 표본으로 하는 반면, KB 시세는 주간 기준 3만4000여 가구를 표본으로 하고 있어 근본적으로 시장동향을 정확히 잡아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세를 기반으로 한 민간기관 통계와 달리 감정원 통계는 조사원이 실거래가나 인근 아파트 단지 거래 사례를 바탕으로 직접 ‘실제로 거래 가능한 금액’을 추정하기 때문에 주관이 개입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물론 민간기관의 부동산 통계가 더 정확하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하지만 최근 감정원 통계를 둘러싼 논쟁은 정부의 주택시장에 대한 관점을 믿기 어렵다는 시장 불신을 그대로 드러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 부동산 통계와 관련한 해프닝은 끝이 없었다. 전세 시장이 들썩이자 신규 거래만 집계하는 대신 갱신계약도 반영하는 식으로 전세통계를 바꾼다고 발표하면서 전형적인 ‘물타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부동산 매매·전세 거래 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KB부동산 통계가 집계 중단을 알렸다가 논란이 되자, 몇 시간 만에 다시 살아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얼마 전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감정원 통계 강화를 주문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의 실거래 현황이 정확하게 반영되는 실거래가 통계를 통해 부동산정책의 토대가 되는 부동산 공공통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지적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국가 공인기관 통계의 신뢰성을 높이라는 취지로 보여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때문에 민간 통계가 위축되는 것은 아닌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세계 모든 나라는 국가와 민간 통계를 모두 적절히 활용해 부동산정책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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