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31 대책이 발표된 날 저녁, 핵심역할을 했던 고위관료랑 자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귀갓길 방향이 같아서 택시를 같이 탔는데 술이 불콰하게 취한 그가 돌연 내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박형, 내가 사무관 때부터 꼭 하고 싶었던 것이 뭔 줄 알아요? 보유세 인상이예요. 실효세율 1%. 왜 1%냐고? 주요 선진국이 그래. 사실 우리는 보유세가 너무 낮아서 부동산이 계속 투기 대상이 돼. 그런데 역대 정권은 보유세만큼은 손을 못댔어요. 내 집 갖는 게 한국인의 로망이거든. 그거 손대면 정권이 날라가. 하지만 누군가는 손을 대야 해요. 그래야 부동산이 정상화될 수 있어요. 종부세 도입은 30년간 관료로서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이야. 그 일을 오늘 했어.”

그는 감회가 새로운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8·31 부동산 대책에 따르면 주택 보유세 실효세율(공시가격 대비 보유세)은 2005년 0.20%에서 점진적으로 올려 2017년에는 0.61%가 되는 것으로 설계됐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자 이명박 정부는 첫 정책으로 종부세 완화를 들고 나왔다. 현재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시가 대비)은 0.16%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공시가로 환산한다고 해도 0.2%대에 머문다.

2005년 정부가 뿌린 보도자료를 보면 당시 실거래가 10억원짜리 아파트 보유자는 220만원의 보유세를 냈다. 네이버 부동산 정보를 이용해 지난 8월 11억5000만원에 매매된 서울의 한 아파트의 보유세를 보니 160만원이다. 최근 주택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공시가격이 미처 따라가지 못한 한계는 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2005년 8·31 대책 이후 보유세가 급격하게 상승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4억원짜리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이 내는 세금과 4000만원짜리 차를 보유한 사람이 내는 세금이 같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보유세가 낮게 유지되면서 집은 점점 주거대상이라는 개념에서 멀어졌다. 자산에 대한 보유부담이 낮을수록 투자수익은 높아졌기 때문이다. 저성장과 높은 유동성이 겹치면서 집은 대표적인 자산증식 수단으로 단단히 자리매김했다. 그 사이 집을 가진 사람들은 낮은 세금에 집값 상승이라는 이익을 챙겼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집값 상승에 따른 부작용이 적잖았다. 높은 부동산 가격은 가계 대출을 늘렸고, 임대료 인상으로 이어졌다. 노벨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된 셈이다.

정부가 마침내 보유세 정상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시가의 70%에 불과한 공시가격을 최대 10년에 걸쳐 90%까지 올리겠다는 거다. 이래도 저래도 집값이 안잡히니 마지막으로 증세 카드를 낸 것이다. 하지만 “집 한 채 있는데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자마자 6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세율을 낮추겠다며 곧바로 물러섰다. 정부의 의지가 의심되는 대목이다.

보유세를 올리지 않고도 집값을 잡을 방법이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정말로 집값 안정화를 바란다면 국민들에게 목표를 명백히 밝히고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약(증세)은 쓰지만 결국은 몸에 좋을 것(집값안정)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쓴 약을 먹을 국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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