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34주년 특집 - 전문가 특별좌담회

“분업을 위해 도입됐던 업역 장벽이 상호 경쟁을 차단하고 역량 있는 건설업체의 성장을 저해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현재의 건설산업에 대한 정부의 진단이다. 2018년 이후 추진되고 있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 작업은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직접시공 확대, 기술경쟁 확대 등 다양한 방안이 법령에 구체화되는 가운데 특히 당장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업역·업종에 대한 분류체계 개편은 전문건설업뿐만 아니라 건설업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창간 34주년을 맞아 본지는 ‘전문건설,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지난달 26일 전문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는 본지 홍윤오 주간이 사회를 맡고, 서울대학교 이복남 교수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신은영 연구위원,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박승국 연구실장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건설산업 구조의 전면적인 개편 속에서 전문건설업계가 취해야 할 올바른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이하에서 좌담회의 주요내용을 정리해본다.

-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설산업 혁신방안의 취지와 궁극적인 건설업의 청사진을 그려주신다면?

박승국 연구실장(이하 ‘박승국’)=혁신방안의 취지는 종합과 전문이라는 업역에 구애받지 않고 능력 있고 잘하는 건설사에 수주의 기회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건설산업의 지속가능성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건설산업에서 가장 거대한 변화를 꼽으라면 생산체계 개편과 건설기술의 발전 두 가지입니다. 건설기술은 통합·융합형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업역을 구분하는 현재 제도로는 생산성 제고의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라는 것이 정부의 판단으로 보입니다.

신은영 연구위원(이하 ‘신은영’)=그동안 정부는 건설산업과 관련해 선진화 및 효율화, 내실화 등 다양한 중장기 정책을 실행해 왔습니다. 특히 이번 혁신방안은 업역규제 폐지 등을 담아 말 그대로 혁신할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공사 능력 경쟁 중심의 건전한 시장 거래질서를 확립하자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혁신방안과 함께 여러 부처에서 추진하고 있는 현장안전, 불공정 관행 해결 등 제도개혁들이 어우러져 긍정적인 시너지를 일으키길 기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복남 교수(이하 ‘이복남’)=생산구조 개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생산성 혁신을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었습니다. 건설이 내수시장에서는 부실·부패 등 신뢰도 하락, 해외시장에서는 수주 불황 등 위기감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입니다. 

또한 생산체계 개편은 1막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4차 산업혁명이나 코로나19 팬데믹 등 일종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나타나고 있는 지금, 건설산업의 생태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건설이 더 큰 거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 새로운 업종 분류체계 개편이 대업종화, 전문성 제고를 동시에 목표하고 있지만 일부에선 두 목표가 모순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신은영=면허라는 것은 최소한의 진입 규제이며, 발주자가 필요한 건설사를 선택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궁극적으로는 발주자가 우수한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개편이라고 볼 수 있고, 따라서 대업종화 자체는 우려하는 만큼 위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업종의 범위에 따라 전문성이 취약해진다는 일부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기본에 충실한 회사, 주어진 역할 안에서 최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우수 시공능력 업체가 선택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복남=기존 28개 공종별 전문공사업이 전문기술을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건설공종은 약 2025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능직종은 123개로 분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8개 전문공사업이 이를 충분히 대변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전문성 이슈는 실적관리와 더 관련성이 높습니다. 실적관리 체계를 고도화하면 교량이나 건축물 등 완성품, 그리고 도로나 공항과 같이 복합설비 등에 대한 공사실적 등을 훨씬 세분화해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앞으로는 역량을 가진 건설사가 우대받을 수 있는 개연성이 현재보다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 앞으로 건설업체 수 변동, 공동도급 활성화, 직접시공 확대 등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제도 변화가 건설현장에는 어떤 변화를 불러올까요?

박승국=건설업 등록기준 완화에 따라 건설사가 늘어나는 추세이고, 수주 경쟁 역시 증가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단순히 업체 수의 증가보다 사업수행 역량과 기술능력이 높은 업체가 얼마나 늘어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업역규제 폐지는 직접시공을 전제로 하고 있어 결국 직접시공 시 생산성이 높은 건설사가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전문건설사의 경우 직접시공 경험이 풍부하다는 강점을 충분히 살릴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복남=건설사에 대한 평가기준과 변별력이 질적으로 높아지게 되면 업체 수는 수요에 따라 축소되리라 봅니다. 또 직접시공이 확대되면 역량 높은 업체는 기회가 많아지겠지만 수준 낮은 업체는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을까요.

공사관리 측면에선 도급이나 하도급 등 건별 혹은 묶음관리에서 작업단위 관리로 바뀌고, 이를 통해 건설생산성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개별 기술 못지않게 시공관리기술 혁신이 부각될 것이고 더 세분화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아울러, 건설시장은 제도에 의한 공동도급이 아닌 산업체 스스로의 역할 분담에 의한 공동도급 활성화를 기대할 것입니다. 수주를 위한 협력이 아닌 수행역량 강화를 위한 협력업체 물색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은영=새 정책들은 건설사의 전반적인 운영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경우 직접시공 과정에서 기능인력 관리나 안전에 대한 관리 등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 나갈지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합니다.

- 업종·업역 개편은 대형사업보다 중소형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시장 규모별로 나타날 변화의 폭이 다르다는 점에 동의하시는지요? 또 대형사업에 참여하려는 전문건설사에 조언하실 부분이 있다면?

박승국=전문건설사에겐 새 시장에 진출할 기회라고 봅니다. 전문건설사의 경우 대형공사의 기획 및 시공을 하는 종합건설사를 따라가기보다 업무용 빌딩, 교량, 터널 등 다양한 건설상품 중 선택적으로 회사의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또한 통합시공 및 관리 능력을 갖춰야 하며, 다공정 시공이 가능한 다기능 기능인력 양성과 보유에도 힘써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은영=각 건설사들이 가지고 있는 실적과 경험을 기반으로 해서 사업 구조를 최적화해야 합니다. 건설 혁신을 통해 종합건설 시장으로 진출하려고 할 때 어떤 식으로 차별화를 시킬지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주로 도로 관련 포장공사업을 해온 업체라면 향후 항만 등 공사로 확대한다고 했을 때 어떤 강점을 가지고 갈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는 업종 간 연합과 협업 방식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이복남=사업규모와 생산체계 개편을 연관시키는 것은 지금까지의 제도에 익숙해진 영향이라고 봅니다. 공사 특성보다 금액에, 기술경쟁보다 물량 배분에 건설제도가 맞춰졌기 때문이겠죠. 앞으로는 거래단계 축소와 직접시공 확대에 더 많은 고민을 하길 바랍니다.

공사규모와 관계없이 직접시공은 건설사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계획 및 관리의 중요성이 과거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봅니다. 사람 중심의 계획과 관리가 아닌 정보 기반의 관리가 필수라 봅니다. 대형사업에 참여할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역량 강화를 선택해야 합니다. 시공기술력을 선택할 것인지, 사업 기획 및 관리 역량을 추가할 것인지, 아니면 완성품 중심이나 전통적인 골조공사 중심의 역량 강화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한정된 국내시장에서 연간 15조 달러에 이르는 세계 시장으로 기술의 무대를 확장시키는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내수시장만으로는 기업은 물론 기술자가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 발주자의 역할도 무엇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신은영=좋은 취지의 제도라 해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건설혁신방안은 실질적으로 제도 도입의 목적에 맞춰 발주자가 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발주자 입장에서도 도전의 영역이 될 것입니다. 종합·전문 간 경쟁이 활성화되면 경쟁률 증가 및 낙찰률 하락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또한 하자보수의 영역까지 발주자가 끌고 나가야 합니다. 향후 몇년간 입찰참가자격 설정 등에 대한 고민과 보완이 이어질 것입니다. 

아울러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현재 발표된 혁신방안들도 향후 10여년간은 과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정부는 새로운 정책 개발보다는 혁신방안의 제도적 안착을 위한 내실화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복남=건설사업의 성패는 주문자인 발주자의 역할과 역량이 제일 중요합니다. 공공공사에서 가장 취약한 부문 중 하나가 공공발주공사 사업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가진 사업책임자(project manager)가 지정되지 않아 개별 계약관리로 전락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발주자의 기능과 역할 및 책임, 사업관리부문별 책임자 지명에 대한 직무역량 명세서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 새 제도들의 연착륙을 위해 뒷받침돼야 할 부분이 있다면?

박승국=발주자가 우수한 업체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건설시장에서의 경쟁이 효율적이고 균형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종합공사 입찰자격을 좀 더 유연하게 꾸려 전문건설의 참여를 폭넓게 부여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업종화된 전문업종 1~3개를 보유한 전문업체의 종합공사 참여가 얼마나 수월한지가 중요해 보입니다. 

이복남=주 52시간제, 일요 휴무제, 임금직불제와 적정임금제, 근로자카드제 도입, 기능인등급제 등 근로자 보호제도가 강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용자 입장은 크게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임금 수준 향상으로 숙련기능공 부족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근로자 수요를 줄이기 위한 산업 단위의 집중 연구를 제안합니다. 또 123개의 기능인 직종을 30개 미만의 다기능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우선 권고하고 싶습니다. 산업 공동대응책으로 근로자카드제와 작업실명제를 연동시키는 방법을 개발해 공유하는 방안도 검토하길 바랍니다.

신은영=서울시에서 활성화하고 있는 주계약자 공동도급 방식이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여타 발주자들도 주계약자 공동도급 방식을 늘려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노무비가 상승할 수 있는 제도들이 여럿 추진되고 있는데, 공사비 등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는지까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인데, 공사비 상승분을 발주자 측에서 반영하지 않는다면 건설 혁신의 취지가 역행할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 외국의 건설제도와 비교해 우리나라는 어느 위치에 있습니까?

이복남=사업자 자격 취득 제도는 면허제, 등록제, 신고제, 무등록 등 4가지로 분류가 가능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소득수준이 낮을수록 엄격한 면허제를,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등록제와 신고제로 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등록제에서 신고제로 가는 초입 단계로 보고 있습니다. 사업면허가 역량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실적과 기술 수준이 업체의 수준을 결정짓는 시대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실적관리를 고도화하고 객관화된 데이터를 통해 기업 간 변별력이 생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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