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로봇, BIM 등 변화와 신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 현상이 흔하게 목격된다. 필자에게는 신기술을 신기루로 보는 것 같다. 마치 외생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것처럼 오해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와 산업, 그리고 기술의 변화는 인류 역사와 함께 공존해 왔다. 크기와 속도에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혁신과 신기술에는 공통점이 있다. 목적물과 기본 기술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아 왔다는 사실이다. 집과 도로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건설하는 순서도 아래로부터 위로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5000년 전에 벽돌 쌓기나 지금의 벽돌 쌓기도 변함없다. 도구와 기술이 보강됐을 뿐이다. 3D 프린팅기술도 벽돌을 쌓는다.

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유니콘기업의 탄생 배경을 보면 기본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다. 미국의 신생 건설회사가 창립 5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기업가치가 10억 달러(한화 약 1조원)를 넘어섰다. 건설의 유니콘기업은 건설에 경험과 지식을 가진 40대가 창업한 회사였다. 신기술이 지배하는 건설이라면 경험과 지식 없이도 가능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신기술은 신기루가 아닌 활용 방법이 좌우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제4차 산업혁명과 신기술이 마치 기존 기술과 프로세스를 버려야 할 적폐 대상인 것처럼 오해하는 것은 틀렸다. 기본(몸)에 어떤 옷(기술)을 입혀야 하는지는 사람(기술인)이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얼마 전 30대 후반의 딸이 가족 여행으로 일본을 10년 만에 재방문했다. 일본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음을 얘기했다. 질서와 청결, 친절, 좋은 서비스에 합리적인 가격도 새롭게 발견했다. 발견했다기보다 재인식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한·일 간 소득격차 1.4배보다 사회와 문화 인프라 격차를 실감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보다 훨씬 강한 국가라는 사실을 재인식한 것이다. 기본기가 깔린 일본 인프라는 필자도 매년 일본 방문을 통해 실감한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전역에 원전 반대시위가 극심할 시기에 교토회의에 참석했다. 시위대가 반원전 시위를 하는데 행인의 통행에 방해를 주지 않기 위해 담벼락이나 도로 펜스에 바짝 붙어 있었다. 길거리 데모로 행인의 교통 방해를 당연시하는 국내와 완전히 다른 모습에서 문화와 사회 인프라 격차를 실감했다. 학내 정규직 처우개선 문제로 노동조합이 중앙도서관의 난방을 중단해 버렸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3자인 학생들에게 피해를 야기했다. 또다시 일본과 한국 사회에서 기본 인식 차이를 실감한 것이다.

국토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내세우면서 10년간 24조원을 투입하기 위해 예비타당성을 건너뛰겠다고 한다. 명목은 균형 발전이지만 실제는 경기 침체와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급한 불끄기라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정부 발표 이후 벌어진 논쟁을 통해 또다시 기본기가 약한 우리 사회의 약점이 그대로 노출돼 안타깝다. 예타는 재정법에 명시된 법적 절차다. 법을 편의에 따라 해석하면 법으로서의 체면이 안 선다. 여당은 균형발전을 내세우지만 야당은 선거용에 불과하다는 상반된 주장이다. 산업체는 이 참에 예타 대상과 기준을 완화하라 주장한다. 시민단체는 재정투자는 신중해야 한다는 그룹과 토건경제 부활이라고 주장하는 그룹으로 양분됐다.

필자는 왜 재정투자가 건설투자로 둔갑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경기 활성화 혹은 고용을 촉진시키기 위해 생활형 SOC나 신규공항 건설에 투자한다면 인프라 축적을 위한 투자이지 건설을 위한 투자가 아니다. 개인이 자기 집을 짓기 시작하면 투자고 정부가 도로를 건설하면 토건경제가 아닌 것과 같다. 국민이 가지고 있는 건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 건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혁신을 위한 건설 협·단체들의 눈에 띄는 노력이 부족하다. 건설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국토 공간 활용에 대한 마스터플랜 구상이 필요하다.

국가 혹은 산업 차원에서 수립한 건설비전과 전략이 없다. 국가와 경제, 그리고 국민 생활의 중추가 될 국가의 인프라 마스터플랜도 없다. 국가와 경제 기반시설이라 말하면서도 정작 큰 그림이 없다. 마스터플랜만 있었어도 건설에 대한 투자 논란이 아닌 국가와 국민 생활 인프라 우선순위와 충족도 논란을 예방할 수 있었다. 필요성 여부가 아니라 재정투입의 우선순위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과 기술기반이 튼튼하지 않으면 일방적 주장과 소모성 논란으로 돈과 시간이 낭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요즘같이 절실하게 느낄 때가 없다. 지금부터라도 국가 인프라 마스터플랜과 국가 건설비전과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건설을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와 미래 세대를 위해서 산업이 나서야 할 타이밍이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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