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 수용과 보상을 통한 택지개발은 그동안 우리나라 주택공급의 큰 축을 담당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1981년 이후 작년 말까지 준공한 택지지구가 5억8500만㎡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신도시(2000만㎡)를 29개 만든 셈이다. 공급된 가구 수도 400만 가구다. 2019년 기준 전체 주택(1600만 가구)의 4분의 1이나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비리 문제는 잊을 만하면 터져 나왔다. 어떻게 보면 당연히 예상됐던 일이다. ‘공공선택이론(Public Choice)’의 주창자인 제임스 M 뷰캐넌은 “정치인과 관료 등 공공 종사자가 공공선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담당자 개인의 이기적인 동기에 의해 움직인다”고 밝혔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면 자본을 축적하는 통로가 됐다”며 “만일 공공만 새 공간을 배분하는 힘을 갖는다면 정치인과 공무원이 자본가계급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요즘 LH 직원들의 사전 투기의혹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LH 수사에 검·경이 모두 참여하라”고 주문했고, 총리는 “투기가 사실로 밝혀지면 관련자들은 모두 패가망신하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안 그래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때문에 좌절하던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투기의혹 문제를 철저히 밝혀 일벌백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하나 생긴다. 처벌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앞으로 이런 일들은 반복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아니다’는 쪽으로 생각이 모아진다.

2·4 부동산 대책 발표 당시 국토부 관계자는 흥미로운 발언을 하나 했다. 4차 산업혁명, 제로에너지 등 신기술 발전 등 생활패턴 변화에 맞춰 도시 공간구조 개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택지개발은 단발성 프로젝트이자 주택공급 하수(下手)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주택공급 얘기만 나오면 마약처럼 택지개발에 손을 댔다.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택지개발은 주민 동의 요건이 없고, 짧은 기간 내에 주택을 대규모로 공급할 수 있다.

다행히 정부도 2·4대책에서 신도시 개발 이외에 주택공급 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도심 고밀개발’을 들고 나왔다. 어렵지만 정공법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낸 셈이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이 역시 우려스럽다. 정부는 이번에도 민간을 믿지 않고, 공공을 들이밀었다. 40여쪽의 자료를 냈는데 ‘공공’이란 단어만 214회 등장한다. 이 계획에 따르면 LH 등은 엄청난 권한을 갖는 기관으로 변신한다. 3기 신도시 개발에선 후보지를 선정하고 나중에 분양까지 맡는다. 정비사업은 조합과 함께 시행(공공재개발)하거나 조합 땅을 수용(직접 정비사업)해 직접 사업을 진행한다. 도심복합 사업에선 용적률 인센티브도 실컷 받는다. 또 토지 소유주 동의 없이 쪽방촌을 수용해 임대주택으로 개발(도시재생)도 한다.

정부는 땅 투기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국민 앞에서 선언했다. 그런데 정작 LH 등에 특혜를 주는 ‘공공 주도 계획’은 더 확대 중이다. 민간 참여 활성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비대해진 권한’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공공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정치인, 관료, 공기업만 특권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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