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매칼럼] 투기 척결, 좀 더 세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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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칼럼] 투기 척결, 좀 더 세심해야 
  •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 승인 2021.03.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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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LH 부동산 투기 의혹 사건으로 가야할 길이 여전히 멀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국민께 큰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한 마음이다. 특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들께 큰 허탈감과 실망을 드렸다”고 사과했다. 호기롭게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2020년 1월 신년사)이라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문 대통령의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 관련 사과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1월11일 신년사에서도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고 머리를 숙였다. 이게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문 대통령의 첫 공식 사과였다. 다만, 이 사과는 문재인 정부 내내 오르기만 한 집값과 부족한 공급물량을 지탄받자 나온 사과였다.

3월16일의 사과는 결이 달랐다. 대통령이 선포한 투기와의 전쟁에서 선봉을 맡았어야 할 공직자가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국민이 분노했다.

이번 사건은 25번의 대책에도 집값을 잡기는커녕 부작용만 양산한 정부의 무능을 넘어,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 신뢰의 뿌리부터 흔들어버린 중차대한 일이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고, 대대적인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2018년 9월 첫 3기 신도시 지정 때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신도시 발표 전까지 250여명이 알고 있었던 사안인데 보안이 잘 지켜졌다. 너무 신기하고 짜릿했다”고 말했다. 치적 자랑에 심취해 한 치 앞 현실도 못 알아보고 뱉은 말이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과 부처·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은 이때부터 경기 광명·시흥, 인천 계양, 고양 창릉, 남양주 왕숙 등 3기 신도시 인근으로 몰려가 노른자위 땅을 몰래 ‘짜릿하게’ 사들이고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지방의원뿐 아니라 대통령을 지근에서 모시는 청와대 직원으로까지 불똥이 튀었다. 김 전 장관만 몰랐을 뿐 이미 투기의 악취는 진동했고, 윗물도 아랫물도 모두 썩고 있었다. 이런 정부와 장관만 믿고 오를 대로 오른 집값과 전셋값, 월세값을 견뎌내던 국민의 가슴에는 시뻘건 피멍이 들었다.

국민 마음은 좀체 위로받지 못할 모양이다. 광명·시흥 신도시 투기로 LH 일부 직원이 얻은 차익조차 몰수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애초에 친일재산처럼 법을 개정한 뒤 소급해 몰수나 추징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는데도 정부와 여당은 막무가내로 그렇게 하겠다고 국민을 현혹했다. 공직자 재산공개 확대 등도 개인정보보호 등의 더 높은 가치와 충돌해 현실화할지 의문이다. LH 해체도 가당키나 한 일인가.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 절대다수 선량한 LH 직원들이다. 일부의 일탈로 조직 전체가 매도당했다. 이들을 보호해야 할 정부까지 앞장서 LH를 때려 댔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성실하게 공직자 본분을 다하고 있는 LH 임직원을 위로하고 사기를 높여줄 대책도 필요한데 이런 논의가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신상필벌의 원칙이 필요한 때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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