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위한 추경 35조원이 뉴딜·그린뉴딜로 포장돼 국회를 통과했다. 한국판 뉴딜에 160조원 투자 정책도 발표됐다. 뉴딜은 1929년 미국발 세계 대공황을 돌파하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내세웠던 경제정책이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후버댐 건설에 막대한 예산과 자원이 투입됐다. 후버댐 건설로 메마른 땅 LA가 인구가 모여드는 거대 도시로 성장했고, 오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도 태어났다. 강수량이 태부족하고 물도 없던 불모지가 후버댐 건설 덕분에 황금 땅으로 변한 것이다. 뉴딜정책은 극심한 경제 불황터널에서 국민을 탈출시킨 정책이었다. 뉴딜정책이 한국판 뉴딜로 부활했다. 한국판 뉴딜은 미국과 같은 토목 댐이 아닌 데이터 댐으로 포장됐다. 토목은 일본 태생 한자용어다. 

토목 댐이나 데이터 댐의 실체가 애매하다. 물을 가두는 댐과 데이터가 담긴 데이터베이스는 분명하다. 토목 댐은 빗물과 흘러나오는 지하수를 저장해 생활용수로 공급하는 국가기반시설이다. 어떤 나라도 토목 댐으로 부르지 않는다. 수자원 댐 혹은 그냥 댐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내리는 강수량의 27%만 댐에 저장되고 67%는 그냥 흘러 버려진다. 댐의 역할은 홍수조절과 용수 공급 두 가지다. 수자원을 관리하는 댐을 ‘인프라 시설’로 통칭하는 것도 국민생활과 산업생산 활동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치산치수’가 민생 정치의 근본이었다. 댐은 치수를 위해 건설된다. 데이터 댐이 없다는 뜻은 정보를 쌓아놓은 곳간은 많지만 데이터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이 없다는 의미다. 이유를 알아서인지 토목 댐과 달리 데이터가 흘러넘치는 데이터 댐이라 주장한다. 유감스럽지만 토목 댐에 물이 흘러넘치면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기술자는 수량조절이 불가능한 댐을 설계하거나 건설하지 않는다.

한국판 뉴딜을 데이터 댐이라는 용어로 정치인에게 누가 각인시켰는지는 모른다. 미국의 경제회생 정책을 토목 댐 건설로 둔갑시킨 이유에 짐작은 간다. 대통령직속 제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미래 성장동력의 핵심을 ‘DNA(data, network, AI)’로 지목했다. 데이터 댐을 구축해 공급축은 네트워크, 활용축은 AI로 연결시키려는 것 같다. 공공투자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한국판 뉴딜을 미국식의 토목 댐이 아닌 데이터 댐으로 포장했다. 필자는 알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나 한국도로공사, 도시교통공사 등 공공기관은 어마어마한 정보를 쌓아놓고 있다. 쌓아놓은 정보는 정보더미일 뿐 활용되지 않으면 쓸모없다. 공공기관은 축적한 정보에 대한 소유권이 당연히 자신에게 있다 주장한다. 객관적으로 보면 국가소유이지 기관의 소유는 아니다. 사용자가 지불하는 비용에 정보 축적비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위원회가 경제난 돌파와 일자리 확충을 위해 DNA와 디지털 데이터 댐을 내세운 점에 시비를 걸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토목 댐과 비교하는 폄하성 발언은 삼가는 게 좋다. 

개별 공공기관이 축적한 정보는 다양한 방식으로 두뇌 기반 신규 사업을 창출할 수 있는 근원지가 될 수 있다. 시장과 역할 분담과 협력이 절대적이다. 공공기관은 법으로 지위를 보장받는 대신 사업영역에 제한받는다. 공공기관은 관리 중심이지 생산 중심이 아니다. 시장은 생산과 수요가 공존한다. 시장은 수요 변화와 경제 흐름을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파헤친다. 제4차 산업혁명이나 AI를 들먹이지 않아도 지금의 산업생태계로는 일감과 일자리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국민은 충분히 알고 있다. 2015년 한국을 방문했던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 박사는 두 차례 KBS 강연을 통해 국민에게 고했다. 2030년까지 지금의 일자리 20억 개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 30억 개가 만들어질 것이라 주장했다.

코로나 팬데믹 영향으로 많은 국민이 이미 일자리를 잃었다.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의 일자리를 기존 산업생태계가 제공하기란 불가능하다. 청년을 무작정 창업으로 내몰지 말자. 공공기관이 축적해 놓은 막대한 정보의 주인인 국가는 청년과 시장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선언하고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줬으면 한다. 어떤 정보가 창고에 보관돼 있는지를 먼저 밝히면 더 좋겠다. 옛말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있다. 구슬은 공공기관이 분산해 창고에 보관하고 있지만 활용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하는 것은 시장과 산업의 몫이지 공공기관의 몫은 아니다. 정부가 미래를 향하는 길이 데이터 기반 신시장 창출이라는 점을 확신했다면 과감하게 시도해야 한다. 데이터 기반 시장과 일자리 창출이 제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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