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건설사라 부르지 마라’ SK건설, 친환경 플랫폼 사업 본격화”, “SK에코플랜트로 새 출발”, “현대건설기계는 플랫폼과 솔루션 제공 업체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 “코오롱글로벌(전 코오롱건설)은 건설 현장 데이터 플랫폼 기술 활용을 재촉”, “대우건설은 LG전자와 ‘AI(인공지능) 스마트 단지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 “삼성물산은 이동식 플랫폼을 적용한 고위험 내화뿜칠 작업 로봇 개발” 등은 최근 한 달 이내 일부 언론 기사의 제목 또는 내용이다. 건설기업도 플랫폼 경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2개 동 220세대의 22년 된 소규모 공동주택 단지가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눈에 띄는 두 종류의 현수막이 마주해 설치돼 있다. 하나는 “신속한 사업추진으로 보답하겠습니다”이고, 다른 하나는 “멀쩡한 집 부수고 리모델링이 웬 말이냐, 내 집 내가 지킨다”이다. 지난해 리모델링 사업추진 조합을 결성하기 위한 사업설명 자료와 조합원 가입 권유서도 배포됐지만 리모델링 사업의 리스크를 알리는 자료도 여러 차례 배포됐다. 올 초에는 조합장이 횡령 혐의로 해임됐다고도 했다. 현수막을 제외하고는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고 있지만,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최근 부동산 시장의 불안 심리와 마찬가지로 중첩되고 있는 듯하다. 아마 3~4년 사업 수행기간 동안 지속될 것이다.

핵심적인 관심사는 공간 확대를 통해 자산 가치가 얼마나 증대될 수 있으며, 그 대가로 공사비는 얼마나 부담해야 할 것인가이다. 물론 대출 이자율의 변동과 주택가격의 변동성도 주요 관심사이다. 시행사와 시공사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는 일도 필요하다. 만일 미래 기대치가 적정한 수준의 범위 내에서 실현되지 못한다면 개인과 공동체에 대한 사회·경제적 파급영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만일 누군가가 현수막을 설치하는 대신에 공동주택 리모델링 사업 플랫폼을 이용해 객관적인 자료에 의한 모의실험(simulation) 결과를 제시할 수 있었다면 고민과 설득과 의사결정의 과정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관련 법 제도의 활용, 구조 변경과 활용의 개선 효과, 내외장재의 재질과 성능, 시행사와 시공사의 역량, 이주비와 금융비용, 리모델링 후 주택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가치 평가 등을 개방적으로 비교 분석할 수 있었다면 찬성 또는 반대의 주장과 제3의 대안 제시는 신뢰의 설득력을 발휘했을 것이다.

한국리모델링협회의 사업안내에 따르면 리모델링은 사용 중인 건물의 물리적 성능과 사회적 성능을 향상시키는 활동이다. 과거의 성능을 미래화시키려면 과거의 실적 자료도 필요하고 미래 예측 자료도 필요하다. 단편 자료보다는 축적된 자료가 효과적이다. 리모델링만이 아니라 건설산업 전반에 무수한 자료와 정보와 참여자들을 연결하는 플랫폼 즉 거대한 ‘판’이 절실하다.

실적공사비 제도가 정립돼 발전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실적공사비의 일회적인 일방통행식 신고에 기인한다. 즉 집행된 실적공사비에 대한 참여 주체들의 피드백이 반영되지 못한다. 공사비 절감 구조는 작동하지만, 비용과 수익 분담의 개선 구조는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가격 비교표와 제품 홍보 사진을 전시하는 중개소만은 아니다. 산업 수요와 공급에 대한 선택과 평가와 의사결정과 피드백과 검증의 순환구조가 역동적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통로이자 변화무쌍한 무형의 ‘판’이다. 주택 수요자가 설계도는 볼 줄 몰라도 주택건설 플랫폼에 접속해 가상 구조와 자재를 투입해 자신이 원하는 주택을 그려볼 수 있다. 시공사와 자재 공급업체를 경쟁구도에서 선택할 수 있고 참여 기업들의 역량을 검증할 수 있으며 공사 진행 과정을 수시로 모니터링할 수도 있다. 건설산업이 조립식 공정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키려면 건설 플랫폼이 활성화되고 플랫폼 기업이 성장해야 한다.

건설산업은 건설 서비스를 ‘생산’하려고만 한다. 건설 서비스를 ‘서비스’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최대의 기업은 대부분 플랫폼 기업이다. 신흥 기업은 물론 전통적인 제조업체도 플랫폼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모든 산업의 장터는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건설산업이 외딴 섬이 될 수는 없다.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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