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능인등급제가 오는 27일부터 시행된다. ‘숙련도’라는 본질적 요소가 빠졌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경력과 자격, 교육·훈련, 포상 이력 등을 반영한 환산 경력연수가 기준이다. 기능인의 등급을 매기는데 가장 핵심인 숙련도에 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렌즈 없는 안경이요, 눈금 빠진 측정기라는 말들이 나온다.

흔히 TV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을 얘기할 때 기준이 무엇인가. 당연히 제1의 기준은 숙련도이다. 어떤 분야이건 오랜 경험과 노력으로 남들이 따라오기 힘든 재주와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을 달인이라고 한다. 단순 반복 작업도 있겠으나 가히 예술의 경지라 할만한 기능을 가진 달인도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명장이 이에 해당한다. 명장은 15년 이상의 경력과 함께 최고 수준의 숙련기술을 보유한 기술자이다. 마땅히 ‘특급기능인’으로 분류될 만하다. 그런 기준으로 숙련도를 파악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왜 굳이 숙련도는 빼는 것일까. 건설 현장에서 수십 년 일했다고 해서 모두가 숙련공일 수는 없다. 20여년 간 단순 운반작업만 해온 건설인을 명장이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치 능력이나 성과보다는 연공서열을 따랐던 구태를 보는 듯하다. 건설업계가 이런 논리에 끌려다니면 미래가 없다.

기능인 등급을 나누는 이유는 무엇인가. 각자에게 합당한 임금을 주기 위함이다. 초급과 특급의 임금이 같을 수는 없다. 숙련도를 제외한 단순 경력만으로 등급을 구분하면 변별력 자체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능인등급제는 도입 논의가 한창인 적정임금제의 산정 근거가 될 것이다. 그에 따른 건설사들의 부담을 고려한다면 더욱 세밀한 등급 구분 장치가 필요하다. 적정임금은 근로자의 기능 수준 즉, 숙련도를 객관적으로 파악한 후 정해져야 한다. 적정임금제도 기능인등급제가 현장에 안착한 후 도입하는 것이 순리에 맞는다. 객관적인 기능 수준 평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능인등급제와 적정임금제가 섣불리 도입되면 벌어질 상황은 뻔하다. 건설사는 재료비, 경비, 이윤 등에서 노무비 손실을 보충해야 하는 등 공사비를 감당하기 힘들게 된다. 이는 하도급업체의 경영악화 및 부실시공, 공사품질 저하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판이다.

적정임금제는 사실상 ‘건설업 최저임금’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은 사회적 연대 관점에서 도입된 것이다. 이에 비해 적정임금제는 노사 간 고용계약 사항을 법적으로 결정하는 구조로, 시장경제 질서를 위배할 소지가 크다. 다른 산업과의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도 지난달 20일 적정임금제와 관련한 두 번째 보고서를 내고 ‘이해관계자 간 충분한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첫 보고서에서는 정적임금제 도입에 앞서 근로자의 기능수준(숙련도)의 객관적 파악과 기능인등급제 안착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늦은 감은 있으나 기능인등급제 시행 초기라도 숙련도를 평가할 수 있는 세부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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