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스트럭쳐와 도시계획이 화두다. 최근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정치인들이 잇따라 대형 교통망 개발사업을 꺼내는 모습이다. 각자 파급력이 대단하고, 서울 도시계획을 넘어 한국 국토계획까지 바꿀 수도 있는 대형 사업들이다.

이같은 현상은 4·7 보궐선거에서 이미 예측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서울시장 후보들은 대형 인프라 스트럭쳐 개발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도 여진은 계속되는 양상이다. 포문은 국토부가 열었다. 5월4일 노형욱 국토부 장관이 국회 청문회에서 발언하면서 상습 교통정체 구간인 경부고속도로 서울 강남~경기 화성동탄 구간을 지하화하는 구상을 처음으로 밝혔다. 민간에서 주장하던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구체화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25일엔 오세훈 서울시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경부고속도로 서울 한남대교~양재IC 구간을 지하화하는 연구용역을 위해 올해 추경에 관련 예산을 반영했다. 그간 서초구가 경부고속도로 서울 구간 지하화를 주창했지만 서울시 차원에서 경부고속도로 지하화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예산안에 반영했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아직 용역수립 단계지만 아이디어 수준을 넘어 행정행위 단계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서울시는 경부고속도로 외에도 강변북로(가양대교~영동대교) 지하화를 위한 예산도 편성했다. 강변북로 일부 구간을 지하화하고 지상에 보도·공원 등을 만들어 한강공원과 연계할 계획이다. 이는 ‘한강 르네상스’를 재추진하기 위한 교두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과거 오세훈 시장 1기 재임 땐 강변북로 뚝섬 구간 480m를 지하화하고 서울숲과 뚝섬유원지를 연결하는 1㎞ 띠 모양의 대형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내놨기 때문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도시계획과 인프라 스트럭쳐를 화두로 올린 것은 환영할 일이다. 도시계획에서 비전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방식으로 도시의 미래상을 설정하고, 개발을 추진하는지에 따라 도시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비전이 없다면 도시는 결국 쇠퇴하게 된다. 놀랍게도 현재 서울의 뼈대는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등장한 개념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도시계획과 교통망 계획이 ‘정치용 선전구호’로 전락할까 우려스러운 부분도 많다. 일례로 김포~부천을 연결하는 서부권 광역급행철도(GTX-D) 노선 등을 포함한 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초안이 공개된 이후 상황을 보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등 유력 정치인들까지 GTX-D 노선 공방에 가세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물론 ‘지옥철’에 시달리는 김포·검단 주민들의 고통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행정적으로 풀어가야지, 정치 이슈로 넘어가는 것은 곤란하다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1853년 파리 시장으로 취임한 외젠 오스만의 별명은 ‘파리(Paris)를 파리로 만든 사람’이다. 오스만은 당시 혼잡해지던 교통을 해결하기 위해 도시를 관통하는 대로(boulevard)를 만들고, 가로축에 개선문과 콩코드광장, 루브르궁전 같은 거대한 상징물을 설치했다. 그런데 ‘좁고 울퉁불퉁한 길 대신 일직선 대로를 확보하겠다’는 비전이 현재 파리의 모습을 만들었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지금도 모여들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오스만의 ‘파리 대개조’가 그가 시장에서 물러나고 한참 뒤인 1869년에서야 마무리됐다는 점이다. 파리를 탈바꿈시키기 위한 시도는 정치적으로 변질되지 않았던 셈이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