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능인 4등급제가 지난 5월27일부터 효력이 발생됐다. 등급제 도입 목적은 건설근로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자는 취지다. ‘등급제=직무역량’으로 인식해 역량에 준하는 대우를 해 주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일용직 건설근로자에게 직업인으로 인식하게 만들자는 취지도 이해된다. 좋은 취지와 목적에도 불구 실효성에 의문이 남는 게 필자만의 기우일까? 왜 건설과 유사한 조선산업에는 기능인등급제가 없을까? 등급제와 적정임금제를 연동시키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미국이 경제 불황기에 도입했던 적정임금제를 왜 15개 주에서 아예 폐지했을까? 실효성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필자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건설기능인 등급제에 3가지가 안 보인다. 첫째, 경력과 자격, 교육과 포상 등으로만 등급을 평가하는 데 정작 직무역량을 나타내는 숙련도가 빠졌다. 둘째, 직종별 다른 숙련도가 필요한데 획일적으로 동등한 등급제를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도 빠졌다. 시장은 경험을 가진 능력자를 찾는다. 셋째, 사용자 혹은 고용주가 빠졌다. 사용자가 건설근로자를 찾는 수요는 직종·직무역량이지 등급이 아니다. 3無(숙련도·시장·사용자)인 기능인등급제에 실효성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먼저 도입된 건설기술인 등급제로부터 기능인등급제의 실효성을 예측해 보자. 건설기술인 4명 중 1명이 특급이다. 직무역량을 등급제가 보증하지도 않는다. 기술인등급제는 입찰과 현장 배치 기준에 이용되는 계약제도에 그친다. 엔지니어링 및 감리 등에 대가 지급 기준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고용주는 등급보다 경력과 직무역량을 더 중시한다. 발주자는 대가를 등급별로 지불하지만 고용주는 직무 능력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기술인등급제가 기능인등급제에 주는 시사점은 제도용에 그치지 시장 수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등급제로 근로자에게 직업전망을 주자는 취지는 실현 가능성이 클 수 없다. 

자유 경제시장 원리는 ‘질은 높고, 낮은 가격’을 선호한다. 등급제가 기능인의 직무역량을 보장하지 못하는 순간 시장은 고등급자보다 저등급이지만 직무역량이 뛰어난 근로자를 찾게 된다.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성과에 비례해서 높아진다. 질 높은 근로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당연히 이직한다. 이를 제도로 등급별 고용을 의무화시킬 경우 이번에는 건설원가 상승분을 발주자가 지급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시장에서는 고등급자 기능인 고용을 기피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도입 취지와 정반대 현상이 생겨가는 것이다.

기능인등급제를 적정임금제와 연동시킬 경우 예상되는 문제도 있다. 임금 조사에서 기능인 직종을 127개로 분류한다. 직종 간 평균 임금은 최저 13만원에서 최고 50만원까지 다양하다. 127개 직종을 등급직종 60개로 통합했다. 근로자 양성을 위해 개발된 교육프로그램에서 집중하는 직종은 15개 미만이다. 국내 한 건설연구원에서 조사·분석한 연구에서 투입근로자 비중이 80% 이상에 이르는 직종은 토목공사와 건축공사에 다소 차이가 나지만 약 15개 내외에 불과하다. 2018년부터 시작한 스마트건설기술개발의 목표가 2030년까지 건설현장의 제작공장화다. 이 경우 지금 건설기능인의 직종분류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2015년에 준공된 일본 오사카 인근 이즈미축구전용 경기장 건설에서 근로자 수요를 80%까지 줄였다. 2008년 국내 한 연구원이 현재의 기술로도 건설현장의 기능인 수요를 50%까지 대체할 수 있다고 전망했었다. 기능인 직종이 10년 이내 완전히 새롭게 재정립되게 된다.

2018년부터 정부는 건설산업·기술 정책혁신 로드맵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건설기술정책 목표는 2030년까지 건설현장의 제작공장화다. 습식공사를 건식공사로 탈바꿈시키는 스마트건설기술 개발, 모듈 및 제작공장조립(OSC) 기술개발이 이미 진행 중이다. 산업·기술 정책혁신이 건설기능인 수급정책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 건설근로자의 수요를 급감시킨다. 동시에 기능인의 직무를 통합시키고 고급화시키게 된다. 양은 줄지만 질은 더 높아지게 되며 자연스럽게 대우도 지금보다는 월등하게 높아지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을 높여주자는 목적인 적정임금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근로자는 일당을 높여주는 것보다 근로일수를 높여주는 대책을 훨씬 선호한다. 일용직이 아닌 상시고용직을 원하는 것이다. 생산기술과 방식, 그리고 생산구조에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다. 현행 건설근로자 수급정책이 유효하지 않게 된다. 지금부터라도 산업·기술정책 혁신이 건설근로자 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해야 한다. 등급제와 적정임금제가 정착되기도 전에 시장은 변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건설근로자 수급정책 개발이 불가피해 보인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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