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그래도 머리 아픈 이슈가 많은 건설업계에 ‘메가톤급’ 화두가 또 떨어졌다.

건설공사 현장에 기존 최저임금과 별개의 ‘임금 하한선’이 설정된다. 건설근로자의 임금 정보를 수집한 후 대다수가 지급받는 임금 수준을 임금 하한선으로 설정하라는 것이다. 전체 근로자가 단일 임금을 적용받는 게 아니라 직종별(127개)로 분류돼 개별 임금을 적용받는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 사항으로 국토교통부가 2017년 12월 건설산업 일자리 개선 대책을 통해 도입 방침을 밝힌 적 있다.

집값 폭등 등 다른 문제에 가려져 있던 적정임금제가 다시 떠오른 셈이다. 정부는 2023년부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300억원 이상 공공 공사에 대해 적정임금제를 시범 도입할 예정이다. 직접 노무비를 지급받는 근로자뿐만 아니라 재료비, 경비 지급 대상이나 현장 작업에 투입되는 근로자에게도 적용이 추진된다. 사실상 건설공사에 해당하는 전기·정보통신·소방시설·문화재수리공사의 건설근로자도 대상에 포함된다. 건설업계에선 결국 민간 공사에도 적정임금제가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적정임금제를 주장하는 쪽은 낮은 임금에 시달리는 건설현장 노동자들 처우 개선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매우 좋은 의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선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 모습이다. 노무비 부담 때문에 중소 건설업체들이 경영 위기를 겪을 수 있고, 현장 고용은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건설업체 중 80~90%가 중소 규모라는 점을 고려하면 파급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대한건설협회는 이 제도 도입으로 공사 현장에서 노무비가 11.4% 증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적정임금제는 미국 연방정부와 30여개 주에서 운영하는 Prevailing Wage 제도를 모델로 했다. 미국은 1929년 발생한 경제 대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1931년 이 제도를 도입했다. 국가가 전략적으로 건설경기를 일으킬 때 썼던 제도인데, 지금 우리나라 실정과 맞냐는 얘기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작업조건, 경력, 숙련도 등 시장 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근로계약을 정부가 강제하면서 엉뚱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최근 건설현장에서도 스마트공장과 자동화 시공 등 현장 투입 인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데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얘기다. 결국 임금에 부합하는 생산성을 제공하지 못하는 건설근로자는 일자리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더 겪는다는 것이 현장에서의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편의점 등엔 ‘키오스크’가 대거 도입됐다. 그 과정에서 소매점 아르바이트 등 일자리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 일각에선 인건비 부담에 직면한 영세 건설업체들이 불법체류자 등 외국인 근로자들에 손을 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장경제 질서에 정면 도전하는 일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발생 가능한 갖가지 부작용을 예상하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외국인력을 불법 고용하는 부작용 등을 예상할 수 있다”면서도 “시범 사업을 진행한 결과 문제가 많이 발생하진 않았다”고 밝힌다. 그런데 정부 시범 사업은 20건에 불과했다. 소수의 사례로 어떻게 정책 부작용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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