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2020년 9월 ‘제1급감염병 등에 의한 경제사정의 변동’이 차임 또는 보증금의 감액 사유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하 ‘상가임대차법’)에 추가됐고, 이어 2021년 5월에는 법무부가 제1급감염병 등으로 인한 상가임대차계약의 해지 가능성을 열어 둔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위 개정안에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3개월 이상 집합금지 또는 집합제한 조치를 받은 임차인이 중대한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폐업을 신고한 경우 임차인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의 조항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 위 개정안이 미처 국회에 제출되기 전인 지난 2021년 6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 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사정변경’의 법리를 근거로 COVID19로 인한 상가임대차계약의 해지를 인정한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A사(임차인)는 2019년 5월 B사(임대인)와 서울 중구 명동 소재 상가건물 1층(20평 규모)을 보증금 2억3000만원, 월 차임 2200만원에 계약기간인 2022년 5월 말까지 임차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위 계약에는 ‘화재나 홍수, 폭동 등 불가항력적 사유로 90일 영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경우, 30일 전 서면통지를 한 뒤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COVID19 확산으로 인해 명동을 찾던 외국인 관광객이 급감하자 A사 매출은 90% 이상 줄어들었고, 이에 A사는 2020년 6월 B사에 COVID19라는 불가항력적 사유로 영업을 계속할 수 없다면서 임대차계약의 해지를 통보했습니다. 그러나 B사는 A사가 주장한 사유는 위 조항에서 언급된 불가항력이 아니라며 다퉜습니다. 결국 A사는 임대차계약 해지를 확인해 달라며 소를 제기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먼저,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해지 또는 차임증감청구권은 ①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객관적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②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하지 않았고 예견할 수도 없었으며, ③ 그 사정변경이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④ 당초의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공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부당한 결과가 생기거나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비로소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인정된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밝혔습니다(대법원 2020. 12. 10. 선고 2020다254846 판결 등).

이어 COVID19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이 제한되면서 점포의 매출이 90% 이상 감소한 것은 위 조항에서 정한 불가항력에 해당한다면서, 설령 이러한 계약해지 조항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은 계약 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했고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로서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흔히 주장은 하지만 법원이 실제 사정변경을 이유로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를 인정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계약(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이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를 강타한 COVID19와 같은 팬데믹의 경우까지 사정변경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법리는 무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이미 위 개정안이 입법절차를 밟고 있다는 점도 감안됐겠지만, 법원이 적극적인 역할을 한 흔치 않은 사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