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를 취득한 몇몇 학자와 연구자들의 명함에서 건설경영 혹은 건설관리를 보게 된다. 왜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명함을 본 사람들은 그저 ‘CM박사’로 통칭해 버린다. 필자의 경험적 판단은 건설경영과 건설관리에는 차이가 있다.

영어로는 동일하게 ‘management’로 표기하지만 앞에 놓인 단어(건설, 사업, 프로젝트)에 따라 큰 차이가 있다. 사업 혹은 기업경영(business)은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다. 건설과 프로젝트는 반드시 시작과 끝이 있다.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은 시간관리가 사업경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뜻이다. 같은 관리지만 사업경영은 시의성(timing)을 중시한다. 프로젝트관리는 적기와 기간(timing & duration)을 중시한다.

사업경영은 연속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고정형인 경상조직이다. 프로젝트관리는 시간에 따라 업무의 속성이 변하기 때문에 조직구조가 가변형이다. 경상조직은 안정화 차원에서 피라미드형의 삼각구조를 선호하지만 프로젝트 조직은 다이아몬드형 조직으로 안정성보다 수시로 균형을 맞추는 불안정한 구조다. 프로젝트 조직이 삼각형 구조로 변하는 순간 프로젝트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공기가 한없이 지연되는 부정적 결과로 나타나기 쉽다. 경상조직 내 직급이나 직위는 수평이동이 가능하지만 상하이동은 불가능하다. 프로젝트 조직에서는 직무 성격에 따라 상하 및 수직이동은 물론 수평이동이 프로젝트가 바뀔 때마다 변하게 된다.

건설기업은 기본적으로 프로젝트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조직의 경직성보다 유연성을 중시한다. 수직이동이 불가능한 조직구조에서는 직무역량보다 연공서열이 더 우대받는다. 글로벌 기업 대부분이 조직구조를 기술부문과 사업부문을 분리해 운영하는 매트릭스조직 형태를 택하는 이유는 시장 변동성과 연동시켜야 하는 특성 때문이다. 시장 부침에 따라 프로젝트 조직을 가변형으로 대처한다. 국내 건설기업 조직 대부분이 토목·건축·플랜트로 불리는 프로젝트부문별 피라미드형이 기본이다. 경상조직이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구조다. 이 조직형태는 본부 조직에 많은 인력이 투입되고 사업부문별 인적자원 이동이 어렵다. 당연히 프로젝트 원가에서 제경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 회사 규모가 클수록 제경비가 늘어난다. 시장 환경 변화에 대응 속도가 느리고 또 수직이동이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프로젝트 전문가보다 경상업무 전문가를 양산한다. 프로젝트 경쟁력이 지속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1세기의 5분의 1이 지나는 시기에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큰 변화가 연이어 전개되고 있다. 기후변화 후유증,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과 디지털전환, 코로나 팬데믹은 시장과 산업, 기술을 완전히 새 모습으로 바꾸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예견돼 왔었다. 스마트폰을 개발한 스티브 잡스는 기술의 유효기간을 11개월 미만으로 봤다. 어느 미국 건설기업은 1999년 말 필자와 면담에서 임직원의 직무역량 유효기간을 10년으로 하여 사내 재교육 프로그램을 설계했다고 했다. 10년이 지난 시점에 만난 자리에서 직무역량의 유효기간을 5년으로 바꿨다고 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CES 2021에서 기술소비자연합회장은 기조연설에서 과거 200년 변화보다 향후 2년 동안 일어날 기술변화가 훨씬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시장 소비자의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요구가 있다. ‘더 빠르게(faster), 더 값싸게(cheaper), 더 좋게(better)’ 3大 요구다. 이 요구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변화가 빠른 시기에는 심사숙고할 시간적 여유마저 주지 않는다. 의사결정이 빨라야 한다. 잘못된 의사결정이 하지 않는 결정보다 더 가치가 있는 세상이 돼 버렸다. 2015년 1월 다보스포럼에서 급변하는 시대 성장을 가로막는 10대 장애요소에 기술 두 가지를 포함시켰다. 핵심 기술부족 및 기술의 변화 속도다. 층층이 직급과 직위가 쌓여있는 피라미드형 조직에서 빠른 의사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경영구조는 의사결정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한다. 빠르게 변하는 프로젝트에서 당장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일선에서 멀어져 있는 소유주가 빠른 결정을 할 수 없는 구조는 분명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임이 틀림없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경쟁력을 지닌 건설기업이 비공개이며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지 않고 있는 이유가 있다. 유럽계 글로벌 건설기업 경영임원의 보임기간이 평균 7년 이상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건설의 자동화를 완성시키겠다고 2000억원 넘는 R&D 예산을 투입해 스마트기술 개발에 돌입했다. 건설현장의 제조업화는 불가피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는 안정된 시장에서는 소유와 경영 분리가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었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서는 투명성보다 생존을 위한 경쟁력 강화가 더 시급한 과제다. 더 늦기 전에 건설업의 경영 패러다임 혁신이 필요하다. 현재는 기술기반 경영의 중요성이 더욱 커져가는 시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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