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부터 오는 10월 중순까지 건설·제조·용역사업자 10만 명을 대상으로 불공정 하도급 거래 실태조사 중이다. 연례행사라 과연 얼마나 성과가 있을지 두고 볼 일이지만 기대를 걸어본다. 사실 파도 파도 끝이 없는 게 불공정 하도급 실태이다. 유형이 다양하고, 생명이 끈질기다. 제재를 가하면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머리를 내민다. 마치 두더지 게임 같다.

그중 하나가 이행보증서를 이용한 갑질이다. 대금 지급보증과 공사 이행보증은 계약의 기본이며 상호 신뢰의 징표이다. 이를 이용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려 한다든지 갑질의 무기로 삼으려 하는 것은 그 기본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대금 지급보증은 그런대로 많이 개선됐다. 
문제는 이행보증제를 악용한 불공정 행위이다. 일단 보증금이 청구되면 보증기관을 상대로 소명도 하고 시비곡직을 가려야 하는 것은 물론 보증 한도까지 묶이기 때문에 공사업체에는 보증서 자체가 일종의 멍에다. 일부 악덕 원도급 업체들은 이 점을 이용해 하도급 업체의 등골을 빼먹는다. 예컨대 보증금 청구를 빌미로 공사비를 후려치거나 타절(공사계약 중단) 이유를 억지로 만들어 이행보증을 청구한다. 원도급사가 책임져야 할 하자보수도 보증금 청구를 인질로 내세워 하도급업체에 떠넘긴다. 공사하자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설계·감리 등 시공 쪽 책임이 아닌 사안에 의한 하자보수도 하도급 시공업체가 자체 비용으로 처리하도록 겁박한다. 이를 거부하면 이행보증서에 의해 보증금이 청구되고 하도급업체는 구상금을 무는 등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보증의 구상권 집행은 하도급사뿐만 아니라 대표이사 개인의 재산까지도 그 대상이 되기 때문에 자칫 사업체와 개인의 파산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점을 원도급사들도 당연히 잘 알고 있다.

이런 행위들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코로나19 사태와 폭우·폭염 등으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게 기가 찰 노릇이다. 피해자가 주로 건설 하도급업체들이어서 더욱 심각하다. 벼룩의 간을 빼먹는 짓이 아니고 무엇인가. 신뢰를 위해 만든 제도를 불공정 거래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일이 용납돼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하도급계약서 작성 시 특약에 부당한 공사비 후려치기나 타절, 하자보수 요구 등을 금지하도록 명시해 놓으면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뭐 그런 것까지 특약에 넣자고 하나”라는 핀잔이 돌아오기 일쑤다. 결국 원청에만 유리한 불평등 계약서 작성을 강요하고 거부하면 잔금 지급 등을 미루면서 집요하게 괴롭힌다는 것이 피해 업체들의 하소연이다. 더욱이 계약이행보증의 경우 일단 분쟁이 발생하기만 해도 보증기관에서 구상권이 청구될 금액까지 계산해 하도급업체 보증 한도를 제한한다. 공정위나 법원 결정도 없이, 심지어 보증금 청구도 전에 하도급사의 권리를 빼앗아 족쇄를 채우는 제도는 하루빨리 개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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