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애완용으로 아프리카 왕달팽이를 2년째 기르고 있다. 야행성이라 매일 밤 지극 정성으로 애호박, 오이, 상추 등을 대접한다. 흑갈색 껍질 길이만 약 15cm에 이른다. 사람의 손바닥 위에서 몸통을 뻗어내면 손목 위까지 오른다. 지름이 5mm 정도에 불과한 흰색 알에서 부화한 녀석이 5~6개월 만에 10~15cm의 견고한 ‘주택’을 장만하는 실력이 놀랍다. 얻어먹기만 하는데 1가구 1주택이 생긴다. 평균수명이 5~6년이라고 하니 태어나서 생애주기를 10분의 1도 채우기 전에 평생 살 집을 스스로 완성한 셈이다.

금융위원회가 가계부채 관리의 고삐를 죄고 있다. LTV(주택담보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에 이어 그동안 중단됐던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앞당겨 강화하려고 한다. 생활고가 깊어져 가계부채가 증가한 측면도 있지만, 부동산, 주식, 암호화폐 등 자산 투자의 증대에 의한 부채가 증가한 측면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농협을 비롯한 일부 금융기관은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중단하고 신용대출 한도도 연소득 이하로 제한했다. 기존 대출금에 대해서는 금리를 인상하고 신규 대출은 규모를 축소함으로써 가계부채의 부실 위험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대출 규모가 2018년 7월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선 이후 연간 5~6% 증가해 왔으나 올해 6월 기준으로는 지난해에 비해 9.9%가 증가한 1219조원에 이르렀다. 가계부채의 증가가 한국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코로나19 확산 이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제기했다.

그러면 대출 한도가 제한되고 금리가 상승한다고 해서 개인이 ‘영끌’ 투자를 포기할 것인가? 문제의 핵심은 왜 가계부채가 증가했느냐이다. 주택 매입과 전세가격의 급증으로 대출 의존도가 높아졌다면, 근로소득의 증가가 제한적이라 주식 또는 암호화폐 투자를 통해서라도 금융자산을 늘려야 한다면 대출 규제가 효과적일까? 가계부채 증가율을 둔화시킬 수는 있을지라도 문제 해결은 아니다.

가계부채를 줄이려면 부채 상환 능력을 높여야 한다. 가계의 소득 원천이 되는 경제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우선이고 본질적이다. 부채 증가의 현상을 질병으로 여기고 항생제 규제를 과다 처방한다면 몸을 움직일 수 없어 드러누워야 한다. 신규 대출을 제한해도 기존 대출금에 대한 이자 부담을 낮춰줘야 한다. 이를테면 기존 주택담보 대출자가 재연장을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금융기관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담보와 대출 규모를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금융기관을 이동하면 신규 대출 신청이 돼 수요자의 선택 자체가 불가능하다. 채무자의 아킬레스건을 알고 있는 금융기관은 대출 재연장 시 가산금리를 높게 적용할 수 있다. 막다른 골목의 개인 채무자는 대출을 연장하면서 실질적인 금리 인상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정부의 규제가 강화되면서 금융기관의 이익은 늘어나지만 개인의 부채 상환 능력과 소비력은 약화된다. 가계부채 총액이 증가한다.

주택가격의 안정화는 실수요, 자산 투자, 공급 여건, 미래 가격 변동, 1인 가구의 증가 등 인구사회적 변동을 포함한 복합적인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가격 현상만을 조절할 수가 없다. 누구나 집을 필요로 한다. 주택 보급률이 100%를 훌쩍 넘는다고 해서 반드시 주택시장이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품질과 구조와 사회문화적 여건에 따라 유주택자와 무주택자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다.

우리가 아프리카 왕달팽이처럼 밥 잘 먹는다고 주거지가 저절로 마련되는 것은 아니다. 모아둔 자금이 있거나 거금을 빌려야 집을 살 수 있다. 저절로 만들어지는 집이 아니라면 집을 마련하려는 ‘몸부림’을 막을 수는 없다. ‘투자’라고 하든 ‘투기’라고 하든 합법적이라면 ‘몸부림’의 동인에 주목해야 한다. 집값이 상승하고 공급이 증가하면 건설업체 돈벌이만 시킨다고 평가하는 것은 비논리적인 불만에 가깝다. 자동차나 휴대폰 수요가 증가하고 가격이 상승한다고 제조업체 금고만 채워준다고 힐난하지는 않는다.

가계부채 규제가 최근 4년간 부동산 규제의 데자뷔가 돼서는 안 된다. 가계의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기업의 산업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 가계부채의 증가를 억제하는 본질이다. 대출 규제의 지나친 강화는 금융의 빈익빈 부익부를 악화시킬 수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일시적 지원금 처방은 가계부채의 목마름을 잠시 달랠 수는 있겠지만 배고픔을 해소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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