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불공정하도급을 막기 위한 관련 법률들이 올해 4/4분기에 접어들고도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이다. 내년 대선을 6개월 앞두고 정치권 관심이 온통 거기에만 쏠려서인가. 아니면 법안 통과를 반대하는 모종의 배경이나 힘이 작용하는 것인가. 이럴 거면 애초 왜 많은 인력과 시간을 들여 법안을 발의했는지 묻고 싶을 지경이다.

21대 국회 들어 발의된 총 법안 건수는 1만2038건(지난 8월31일 기준)이다. 이 중 불공정 하도급을 막기 위한 법안은 34건에 불과하다. 갈수록 지능화하고 진화하는 불공정하도급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발의 건수 자체가 부족한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만만찮다. 통과된 법안은 기술자료 요건을 완화하고 기술자료 제공 시 비밀유지계약 체결을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 단 1건이다. 나머지 △부당특약 효력 무효화 △기술자료 침해에 대한 손해액 추정 규정 △기술유출·유용행위 10배 배상 등 손해배상 강화 규정 △전속거래 강요의 계약조건 설정 금지 △분쟁조정의 조정권 보호 규정 △하도급 입찰결과 공개 제도화에 관한 법률안 등 33개 법안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상당수는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다가 무산돼 21대에 재발의된 경우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하는 시늉만 하다 무산돼버리는,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물론 공정을 따지는 입법은 양쪽 이해관계가 걸린 만큼 결론 내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명백한 불공정하도급이나 갑질을 계속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원도급업체가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교묘하게 유출 또는 유용하거나 탈취하는 행위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수급사업자의 이익을 제한하는 다양한 형태의 부당특약이나 하도급대금 후려치기는 또 어떤가. 애써 공사를 해주고도 대가를 떼이는 일이 더 이상 관행이란 말로 덮여서는 안 된다. 이런 갑질을 뿌리 뽑지 않고서는 건설산업의 미래는 발전이 없다.

사실 이 모든 것을 법과 규제에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자 하책 중의 하책이다. 최선책은 건설업계의 ‘양식(良識) 회복’과 ‘자기 정화(self-purification)’ 능력이다. 건설업계가 지나친 이익 추구에만 골몰하지 말고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기반으로서의 자부심과 품격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 일정한 선을 넘지 않고 상생의 지혜를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거에도 불법하도급 근절 방안이 없었던 게 아니다. 아무리 센 규제를 만들어내도 교묘한 새로운 수법이 등장할 수도 있다. 이것을 모두 법과 규제로 막아낼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건설업체 모두에게 제약이다. 스스로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따라서 제일 좋은 것은 욕심을 버리고, 일정한 선을 지키는 것이다. 원·하도급 관계에서 갑질과 지나친 탐욕을 버리는 노력을 스스로 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을 못 하면 하책 즉, 무수한 법으로 제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스스로 매를 버는 격이다. 갑질은 습관처럼 계속하면서 이를 방지하려는 규제는 이런저런 이유로 반대만 한다면 건설업계의 갈등은 영원한 도돌이표가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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