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의 ‘법률이야기’

명의신탁이란 대내적 관계에서는 신탁자가 소유권을 보유해 이를 관리·수익하면서 공부상의 소유명의만을 수탁자로 하여 두는 것을 말합니다.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은 명의신탁약정과 명의신탁약정에 따른 등기로 이루어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을 무효로 정하고 있습니다(제4조 제1항, 제2항). 따라서 명의신탁약정에 따라 명의수탁자 앞으로 등기를 하더라도 부동산에 관한 물권변동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만약 명의수탁자가 아무런 권리도 없이 신탁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는 경우,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에게 어떤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요.

먼저,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된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는 경우 형사상 횡령죄가 성립하는지 문제됩니다. 지금까지 법원은 명의수탁자가 임의로 부동산을 처분하는 경우 명의신탁자에 대한 횡령죄가 성립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1999. 10. 12. 선고 99도3170 판결 등). 횡령죄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는 경우에 성립하는데(형법 제355조 제1항), 법원은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해 명의수탁자가 임의로 부동산을 처분한 경우에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횡령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1. 2. 18. 선고 2016도18761 판결).

대법원은 양자간 명의신탁의 경우 명의수탁자와 명의신탁자 간의 관계는 형법상 보호할 만한 가치 있는 신임에 의한 관계가 아니라는 점,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볼 수도 없다는 점을 근거로 명의수탁자가 신탁받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해도 명의신탁자에 대한 관계에서 횡령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제 명의수탁자가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하더라도 횡령죄의 책임을 묻기는 어렵게 됐습니다.

다음, 명의수탁자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문제됩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은 명의신탁자가 명의신탁된 부동산을 임의 처분한 명의수탁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서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1. 6. 3. 선고 2016다34007 판결). 대법원은 명의신탁된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행위가 형사상 횡령죄로 처벌되지 않더라도 위 행위는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써 민사상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것입니다.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제4조 제3항에 따라 명의신탁약정과 그에 따른 물권변동의 무효는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고, 이에 따라 명의신탁자는 명의수탁자가 제3자에게 부동산을 임의로 처분한 경우 제3자에게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해 그 소유권이전등기의 말소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명의신탁 받은 부동산을 명의신탁자의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임의로 처분한 명의수탁자는 명의신탁자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를 한 것이고 이로 인해 명의신탁자에게 손해가 발생했으므로, 명의수탁자의 행위는 민법 제750조에 따른 불법행위책임의 성립요건을 충족하는 것입니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지도이념 및 증명책임의 부담과 그 증명의 정도 등에서 서로 다른 원리가 적용됩니다. 따라서 형사상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침해행위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하는지 여부는 형사책임과 별개의 관점에서 검토돼야 합니다(대법원 2008. 2. 1. 선고 2006다6713 판결 참조). 명의수탁자가 명의신탁된 부동산을 명의신탁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처분하는 경우, 비록 횡령죄의 성립이 문제될 여지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명의수탁자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발생한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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