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직장이나 직업만으로 생계가 어려워 어느새 ‘n잡러’가 보편화됐다. 어느 전문기관이 실시한 최근 조사에서 직장인 5명 중 1명이 투잡을 통해 수입을 보충한다고 한다. 정년을 2년 앞둔 교수가 퇴임 후를 미리 걱정한다. 4년 임기 국회의원직을 끝낸 지인도 생계 고민을 털어놓는다. 61세 정년을 3개월 앞둔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퇴임 후 고민을 얘기한다.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나 건설현장에서 일감을 찾지 못한 사람이 걱정하는 생계와는 다르게 보이지만 일을 찾는 고민은 같다.

5월 고용정책심의회에서 정부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고용 유지가 방점이다. 코로나19 이후 산업체가 고용한 인력을 유지하는 데 다양한 방안이 포함돼 있다. 미국과 서유럽국가들이 펼친 고용 유지 정책을 벤치마킹했다. 미국의 경우 1929년 대공황 발생 시 고용 인력 25%가 실직했다. 코로나19 여파로 4월에 14.7%가 실직했다는 통계가 나왔다. 경제를 살려 고용을 늘리기 위해 뉴딜정책을 펼쳤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인프라 투자를 감행했다. 개인에게 금전을 보상해주기보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정책이 핵심이다. 고용 유지 혹은 창출에서 금전적 보상과 일자리 제공 중 어떤 것이 더 지속 가능한가?

팬데믹 발생 이전에 이미 일자리 혁명은 일어나고 있었다. ICT(정보통신기술)와 스마트 기술, 제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 전환 등에 공통적으로 담긴 내용은 생산성 혁신이다. 일자리가 기계화, 자동화, 인공지능(AI) 기술 등으로 대체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 박사가 4년 전 강연에서 금세기 내 기존 일자리 20억개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 30억개가 생겨날 것으로 예측했다. 새로 탄생될 일자리 20억개는 프레이 박사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생겨날 일과 일자리가 불일치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 고용과 일자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벽하게 바꿀 전략과 정책 개발이 절실하다.

퇴직을 앞뒀거나 임기를 마친 사람 모두 전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는 공감한다. 공통적 고민은 ‘인생 이모작’이었다. 법으로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도 직무 혹은 기업이 지속가능한지를 확신 못하는 세상이다. 청년이 바늘구멍만큼 통과하기 어렵다는 공무원 임용 시험에 매달리는 것도 이런 직업과 직장 불안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고용 대책이나 정책 모두가 팬데믹이 끝나면 일자리가 복원된다는 점을 전제로 한 한시적 고용 유지가 핵심이다. MIT 잡지 편집장이나 헨리 키신저 등 절대다수가 팬데믹이 종식돼도 우리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장담한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다시 일터로 복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생산성 향상을 무기로 기업은 인력 정원에 대한 개념이 엷어졌다. 퇴직자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새로운 일터를 찾는 것은 흔히 ‘이모작 인생’이라 한다. 일자리를 또 옮기는 사람을 ‘3모작’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으로 일터만 바꾸는 사람을 ‘다모작 인생’으로 부르는 것이다. 최근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다모작 인생’이 돼야 한다는 말이 공감을 일으켰다. 필자는 ‘다모작’과는 다른 생각이다. 모작은 일터를 옮기거나 직장을 바꿀 뿐 기술이나 지식 역량을 높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진행 중이지만 뜨는 일과 지는 일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넓게는 아마존이나 구글 등의 기업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올랐다. 국내에서 네이버와 카카오 기업 가치에 변동성이 높은 것과 같다. 비대면 사업이 부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보면 제조업은 그대로 제조업이지만 포털기업은 이미 사업 방식과 범위를 우리가 깨닫기 전에 다양화시키고 있었다. 커피 왕국 스타벅스가 핀테크금융으로 변신 중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매출을 검색 포털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찾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팬데믹 영향은 맛보기에 불과할 뿐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 전환, 코로나 팬데믹 등 외부 환경변화도 사람의 중요성을 비켜가지 못한다. 사람이 중요하지만 가치는 기술과 역량에 따라 달리 평가된다. 현재와 미래는 보이지 않는 기술 전성시대다. 보이는 물리적 기술은 병렬보다 직렬이다. ‘다모작’은 직렬직업이다. 보이지 않는 기술은 병렬이다. 동시 집행하는 기술이 많을수록 역량이 높다는 말이 조만간 생겨날 것이다. ‘투잡’이 대표적인 병렬직업으로 특수했지만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 확실하다. 평생 직업이나 직장이 아닌 수시로 변하는 기술을 얼마만큼 활용하는지에 따라 사람의 가치도 달라진다. 직장과 직업이 분리되는 게 현실이다. 평생 학습을 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돼 버렸다.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 산학협력중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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