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정부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의결했다. 사업장에서 단 한 번 사고만으로도 자칫 기업주가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을 물어야 하는 법이 내년 1월27일 시행만 남겨놓게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 시행되는 탄소중립기본법과 일감 몰아주기 규제 등 이른바 ‘기업 규제 3법’이 석 달 후 동시에 경제·산업계를 옥죄게 됐다.

건설업계는 이 중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법 규정이나 판단의 잣대는 모호한 반면 처벌은 명확하고 과하기까지 한 이상한 법이다. 사업주나 노조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법이다. 정부는 규제심사를 통해 당초 입법예고안의 일부 추상적인 표현을 시행령에서 더 구체화했다고 밝혔다. 가령 ‘적정한 예산’을 ‘필요한 예산’으로, ‘덥고 뜨거운 장소에서 발생한 열사병’을 ‘폭염특보 발령지역 내에서 발생한 심부체온상승을 동반하는 열사병’ 등 표현으로 바꿨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영 책임자 의무사항이 구체적이지 못하고 안전보건 관계 법령도 불명확하다. ‘적정한 예산’이란 표현 역시 여전히 코걸이 귀걸이 되기 쉽다. 적용 범위에 발병의 종류만 있을 뿐 중증도 기준이 없어 경미한 질병도 중대산업재해로 처벌받을 수 있다. 요컨대 건설현장의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서는 발주자와 사업주, 근로자가 모두 함께 철저한 예방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이 법은 오로지 사업주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평가다.

그렇다고 근로자에게 무조건 유리한 것도 아니다. 가령 책임 여부를 가리기 위해 작업장 내 CCTV 설치가 거론되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작업장 여건에 따라 CCTV 설치가 곤란할 수 있고 개인정보나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노조가 반대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 신청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더욱 첨예화할 가능성도 크다. 지금까지는 업무 관련성 여부가 확실치 않더라도 산재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사업주가 묵인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하에서는 불복소송이 늘어날 게 뻔하다. 이 경우 근로자는 산재보험금을 못 받거나 소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모든 건설현장은 ‘사망사고 0’이 목표이다. 그러나 그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조심해도 사고는 막을 수가 없다. 어쨌든 최소화해야 한다. 변명이나 핑계 만들기가 아니다. 반인륜적 흉악범도 아니고, 불가피성을 배태한 사고를 어떻게 최소 하한형으로 의율할 수 있나. 죄형법정주의나 과잉금지원칙에도 어긋난다. 시행 시기를 늦추고 예방의 실효성을 높이는 동시에 처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내용의 보완 입법이 나와야 한다.

기업은 이렇게 궁지에 몰렸는데 경찰까지 가세했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이 맡게 될 중대재해처벌법 수사권을 경찰에게도 달라는 요구다. 기업들은 경찰의 중복수사, 처벌 위주 과잉수사, 별건 간섭이 두렵다. 안 그래도 검·경 수사권조정으로 할 일이 잔뜩 늘어나지 않았나. 의욕도 좋지만 시장과 기업들 처지를 봐서라도 경찰은 이번엔 좀 자제해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대한전문건설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