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을’의 현실이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불공정 하도급 피해를 반복해서 당하는가 하면 관계 당국에 억울함을 호소해 봐야 사건처리에 수년이 걸리기 일쑤다.

지난 3일 국감서 국회 정무위원회 강민국 의원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받아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까지 6년 동안 하도급법을 상습적으로 위반한 사업체는 44개에 달한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39건(56.8%)으로 가장 많고 건설업이 15개(34.1%)로 그 뒤를 이었다. 대표적인 위반 사례 160건 중 어음할인료 미지급 등이 39건(24.4%)으로 가장 많았고, 대금 미지급 등이 38건(23.8%), 지연이자 미지급이 31건(19.4%) 순이었다.

문제는 이 업체들 모두 적어도 3회 이상 법을 위반했으며, 이 중 절반에 가까운 18개 업체는 4회 이상 법을 위반한 사례라는 점이다. 44개 업체 중 4회 위반이 13개, 5회 위반이 3개, 6회와 7회 위반이 각 1개씩이다. 공정위는 3년간 하도급법 위반으로 3회 이상 경고 또는 시정조치를 받은 사업자를 하도급법 상습위반사업자로 지정해 관보나 공정위 홈페이지에 1년 동안 명단을 공표하고 있다. 또한, 상습적인 법 위반 사업자에게는 입찰 참가 자격 사전심사나 물품구매 적격심사 때 감점 등의 불이익을 주고 있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지난 3년간 경고 69건(43.1%), 과징금 49건(30.6%), 시정명령 42건(26.3%) 등의 조치를 했다. 실질적 제재인 고발은 5건(3.1%)에 불과했다. 약발이 별로 안 먹힌 것이다. 강 의원도 이처럼 상습적 법 위반자가 많은 이유에 대해 “처벌이 약하기 때문”이라면서 “직권조사 등을 통한 더욱 강력한 조사와 제재 수단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사건처리 방식과 기간도 을을 괴롭히기는 마찬가지다. 접수되는 사건 수는 해가 갈수록 주는 반면 처리 기간은 계속 더뎌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일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공정위 사건 조사 후 마무리까지 소요된 일수는 평균 878일이었다. 해가 두 번 바뀌고 다시 거의 반년이 지나서야 한 개 사건에 대한 결론이 나는 것이다. 윤 의원은 구체적으로 신고를 포함한 조사에만 437일, 조사가 끝난 후 위원회 의결까지 182일이 소요됐다고 밝혔다. 또 위원회 행정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후 확정판결까지 259일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소송 전 공정위 단계에서만 보더라도 평균 619일이 걸렸다는 얘기다.

민형배 의원도 공정위 상정 사건 수는 매년 줄어듦에도 조사와 심의 기간은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즉, 공정위 상정 사건 수는 2016년 472건에서 2020년 293건으로 계속 줄어드는 반면 조사 기간은 2016년 164일에서 2020년 315일로 매년 증가했다. ‘지연된 재판은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률 격언이 있다. 작가 정을병의 육조지(1974)에는 ‘…불러 조지고, 미뤄 조지고…’라는 대목이 있다. 딱한 처지의 을에게 하세월의 사건처리는 을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을에 대한 상습 갑질 방지와 신속한 피해구제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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