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사자성어를 발표하는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 지식인들은 ‘사슴을 가리키며 말(馬)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측근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대통령 스스로도 사슴을 말이라고 일컫는 형국’을 비판한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주택분야만 놓고 보면, 올해의 사자성어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이 될 것 같다. 전세는 품귀현상을 보이며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어서 ‘전세대란’으로 명명되었고, 월세 전환 가속화는 저소득층과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단시간에 급격히 증가시키고 있어 ‘미친 주거비’로 불리고 있다.

전국 전월세 비중이 43.4%(752만 가구)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정의 약 절반 정도가 주택을 임차하여 살고 있다는 뜻이다. 이들 가정은 계약 만료가 다가올 때마다 불안과 위기를 겪고 있다.

이렇듯 국민들이 주거전쟁에 내몰리고 있는데도, 정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집값을 높이기 위한 정책들만 쏟아내면서 주거비 상승을 부추기며 시장을 더욱 교란시키고 있다. 서민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홀로 고군분투해야만 한다. 결국 자구책으로 또다시 대출창구를 찾거나, 도시외곽 변두리로 이사 가는 방법 외엔 대안이 없다. 그래서 고립무원이 된다.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일련의 부동산 대책들은 모두 집값 띄우기 정책이었다. 세입자들을 위한 대책이라곤 ‘빚내서 집 사라’는 대출규제 완화 정도였다.

지난번 ‘부동산 종합선물세트’로 극칭하던 4·1대책 발표 이후 주택경기는 반짝효과에 머물렀다. 대출완화를 위해 LTV‧DTI규제를 풀면서 ‘더 이상 나올 대책은 없다’라고까지 언급됐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오히려 저소득층의 빚만 늘어가고 있다.

2014년 11월 현재, 가계부채는 사상 최대치인 1060조원을 돌파하고 있다. 주거비 문제는 가계부채로 이어지고, 가계부채 증가는 가처분 소득감소로 이어져 소비를 위축시킨다. 경제 활성화를 내 건 정부가 오히려 소비를 위축시키는 정책을 내놓은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이다.

가계부채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재 저금리 기조인 국제 금리가 인상이 되면 대출상환이 어려운 서민들의 이자부담은 갈수록 가중될 것이다. 깡통주택들이 쏟아져 나올 경우, 기존 집값이 하락하면서 부동산 시장 전체가 얼어붙게 될 우려가 있다. 결국 세입자도 집주인도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는 것이다.

이미 지난주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성명을 통해 내년 중반 금리인상 방침을 기정사실화했다. 부실대출 문제는 막연한 위험이 아니라 당장 코앞으로 다가온 당장의 위기이다. 이를 모르는 척 외면하는 것이 바로 정부의 지록위마이며, 곧 닥칠 문제에도 정부대책과 안전망 없이 스스로 대비해야 하는 것이 바로 국민들의 고립무원이다.

우리 정부는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전월세대책은 국민의 기본권인 안정적 주거의 문제이다. 기존 부동산 정책의 기조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가계부채 경감방안을 시급히 마련하고, 부채를 줄여나가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 국민을 위한 정부의 자세일 것이다.   /김상희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경기 부천시소사구·국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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