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5일 광주의 한 아파트 인근 도로 옹벽이 붕괴돼 차량 수십 대가 쏟아진 토사에 파묻힌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해빙기를 맞이해 급경사지의 안전사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국민안전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2월 현재 전체 관리대상 급경사지 1만3599개소 중 재해위험성이 높은 D등급 급경사지는 451개소, 재해위험성이 매우 높은 E등급 급경사지는 38개소에 이르렀다.

재해위험성이 높은 D·E등급 급경사지 489개소의 지역별 분포를 살펴보면, 강원도가 175개소로 36%를 차지했고, 경남이 113개소(23%), 전남이 49개소(10%)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전국 E등급 급경사지의 42%인 16개소가 전남에 있어 이에 대한 점검 및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해등급은 모두 5단계로 나뉜다. A등급은 관리 미필요, B등급은 위험성은 없으나 관리 필요, C등급은 위험성이 있어 지속적인 점검 필요, D등급은 위험성이 높아 정비계획 필요, E등급은 위험성이 매우 높아 정비계획이 필요한 곳이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옹벽의 경우, 급경사지 안전진단에서 위험성이 없는 B등급 판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B등급이었기 때문에 해빙기 인명피해 위험시설에 대한 판단에서도 뒤로 밀렸다. 이 때문에 위험성이 없는 것으로 분류된 급경사지가 과연 안전한 것인지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자체 안전점검의 정확성 문제는 이전에도 제기됐다. 작년 7월24일, 광주 북구 모 아파트 지하 공간 기둥에 2개의 균열이 생기고 하중을 견디지 못해 박리현상이 발생해 주민들이 긴급히 대피한 사고가 있었다.

이 아파트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특정관리대상시설물 안전점검에서 B등급을 받았다. 급경사지의 예는 아니지만 지자체의 안전점검이 부실했다는 점에서 광주 옹벽 붕괴 사고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급경사지와 특정관리대상시설물의 안전점검을 하는 주체는 기초자치단체이다. 기초자치단체의 사정을 들어보면, 몇 안 되는 담당 공무원들이 이들 위험지역과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을 매년 실시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하소연을 한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때로는 건축이나 시설 쪽에 전문성을 가지지 않는 공무원들이 점검을 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한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민간 전문가들을 참여시키는 것조차 힘들다는 얘기도 들린다. 사람은 없는데 점검해야 할 위험지역이나 시설물은 많으니 결국 육안에 의존해 형식적인 점검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다.

점검을 하는 공무원은 최선을 다해 시설물이나 급경사지의 위험성을 판단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현실적인 어려움을 들어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입법으로 발생한 점검 의무가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을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살피고,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이 옳다.

1대 29대 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한 번의 큰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29번의 작은 사고가 있고, 작은 사고 이전에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300번의 사소한 징후가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대형 재난 사고는 항상 그 사소한 징후와 작은 사고를 무심히 지나쳐서 발생한다. 왜 무심히 지나쳤냐고 관계자를 탓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충실한 점검이 시스템적으로 보장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제도적 개선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다.    /유대운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서울 강북구을·안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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