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 초년 기자 시절, 특히 기상청을 출입할 때, 일본이나 다른 외국에서 큰 지진이 나면 늘 따라붙어 썼던 기사 제목이다. 늘 제목이 비슷했다. 혹시 모르는 가능성에 대한 기사였다. 이론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한국에서 지진이 발생할 것이란 생각으로 쓴 기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난달 12일 한반도 지진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인 5.8의 강력한 지진이 경주를 강타했다. 물적, 경제적 피해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여진 등으로 국민이 느낀 공포와 불안이 ‘트라우마’ 수준이다.

결국, 한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 것이 사실로 확인됐다. 또 이번 지진을 통해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한번 재해와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 안전시스템의 부재가 확인됐다.

고질병이다. 특히나 이번 지진을 보면서 사회간접자본 등을 총괄 관리하는 국토교통부의 무대책과 불감증이 더욱 심각하다는 생각이다.

지진 등 재난의 형식적인 컨트롤타워는 국민안전처다. 하지만, 내진설계 보강 등 실질적인 지진관련 재난 관리 책임 기관은 국토부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내진설계기준 대상 시설물 12만7306개소의 내진율은 40.93%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공건축물(5만1903개소)의 내진율은 17.27%로 더 낮다. 이 외에도 곳곳이 사상누각인데, 다 예산 탓이라고 한다. 예산을 배정받지 못해 2012∼2013년 이후로 보강 설비를 못했다는 것이다.

핑계다. 우선 순위를 뒤로했기 때문에 예산이 안 나온 것이다. “지진이 설마 일어날까” 하며 그 돈으로 정부 관심 정책부터 채워 나간 공백이 이런 현실로 돌아왔단 얘기다.

기실, 한국의 지진 관리 시스템의 역사 자체가 일천하다. 우리나라는 1995년 일본의 고베지진을 계기로 ‘자연재해대책법’에 지진을 처음으로 포함했다. 이 법은 선언적인 것이라 실효성 있는 지진대책을 추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2009년 ‘지진재해대책법’(지진·화산재해대책법)에서 지진방재 종합계획의 수립·추진, 기존 시설물의 내진보강기본계획 수립 및 추진 등이 규정됐다.

아무리 역사가 짧다한들 그래도 법이 할 일을 명시했는데, 국토부의 극에 달한 안일함에 국민은 희망을 잃는다.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에 따르면 국토부는 올해 9월9일 지진재난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을 개정했는데, 부록에 추가한 ‘언론홍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 ‘감동적인 휴먼스토리를 발굴하라’, ‘10초 내에 (기자의 질의응답에) 짧게 답변하고 준비되지 않은 돌발 인터뷰는 삼가라’는 등의 내용을 넣었다고 한다. 매뉴얼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인지 언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것이 목표인지 의문이다.

한심하다. 지진은 전 세계 과학자들이 꾸준히 연구하고 노력했음에도 아직 정확한 예·경보는 불가능하다. 지진 대응 선진국이라는 일본도 아직은 경보의 시차가 있다. 그래도 절대 원칙은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예방과 대비가 최우선이다”다. 언론 홍보보다는 훈련과 매뉴얼이 더 중요하고, 시설물 내진보강을 통한 실질적 대비조치가 시급하다. 국토부장관 집무실을 경주로 옮겨야 제대로 할 텐가. 한심하다, 정말.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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