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5일 아침. 세종시 국토교통부 청사로 가기 위해 KTX를 탔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광명역을 지나 터널로 진입한 순간 KTX가 갑자기 멈췄다. 엔진 소리가 사라지고, 몸이 쏠릴 정도로 급제동하는 게 동력이 끊긴 것 같았다.

보통 이럴 땐 안내방송이 나와서 열차가 멈춘 이유를 알려준다. 그런데 이날은 아무런 안내 방송이 없었다.

승객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안내방송할 사람도 없나 보다”라고 한 여성이 혼잣말을 했다.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도노조가 파업 중인 게 떠오른 것이다.

다행히 열차는 곧 다시 힘을 내달렸지만, 오송역에 도착할 때까지 불안했다.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살짝 공포도 느껴졌다.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급정거인지, 대체 인력 기장의 실수로 인한 사태인지, 정비 불량으로 인한 기계 결함인지를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철도 파업이 10월27일로 한 달을 넘겼다. 역대 최장기 기록을 하루하루 경신 중이다. 사측과 노측의 대화나 협상도 전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무기한’ 파업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노조 합의 없는 성과연봉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노측 입장이나, ‘불이익 변경’이 없기 때문에 노사협상 사안이 아니라는 사측의 주장 모두 들었다. 그러나, 필자가 경험한 5분 남짓의 ‘터널 공포’를 감내하는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곳곳에서 사고·고장이 잇따르고 있다. 언제 대형 사고가 발생할지 모를 일이다. 국민을 불편하게 한 파업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없어야’ 한다.

서울 강남권 일부 지역을 두고 말이 나오는 ‘부동산 과열’에 대한 정부 대응도 여간 시원찮다. 청약에 당첨만 되면 수천만원 이상의 목돈을 쥔다.

그래서 부동산 규제 대책 필요에 대한 여러 말들이 나왔다. 사태가 이런 지경인데도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이른바 ‘청약 시장에 대한 규제가 나올 수도 있다’는 언급, 즉 ‘구두 개입’만으로도 효과를 본 것으로 치나 보다.

부동산 지탱 경기의 붕괴, 즉 ‘쓰나미’가 밀려오는 조짐을 보고도 대책을 미루는 행태다. 명백한 직무유기다.

부동산 재앙이 우리 경제를 덮치기 전에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13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와 투기판으로 전락한 부동산시장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몇몇 건설사의 파산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가계 파산이 잇따르고 금융 부실이 현실화된다. 소비 위축으로 경제는 빈사 상태로 치닫는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컨트롤 타워가 없다. 대통령은 비선 실세 파동에 휩쓸려 안위가 위태로울 지경이다. 나라의 지도자가 신뢰의 위기에 처한 것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KTX가 터널에 멈춘 날, 대통령이 사과했다.

대통령이 고개를 숙인다고 다들 숨 죽이고만 있을 것인가.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할 각 부처 수장들의 의식이 더 위태롭다. 이들을 보면 우리 경제에 ‘진짜 위기’가 온 것은 분명한 듯싶다. 제발 국민을 생각한다면 복지부동에서 벗어나라.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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