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사회에 한번 형성된 것은
 관성, 즉 경로의존성 때문에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청탁관성을
 깨려는 게 부정청탁금지법이다
 고질적인 뒷문문화에서 벗어나
 신뢰를 지향하는 새 방향성은

                            되돌릴 수 없는 거대 물결이다”

경제학에서는 보통 경제발전의 중요한 요소로 인구, 근면한 노동, 자본축적, 교육, 기술혁신 등을 드는데, 그 이전에 ‘효율적인 제도’가 경제발전의 근본적 원천이라는 주장도 있다.

‘인간사회에 한 번 형성된 것들은 외부로부터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관성, 즉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때문에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경로의존성을 탈피하면 발전하는 경우가 많지만 제도를 급작스럽게 바꾸는 데에는 저항이 따르기도 한다. 각광받는 상품이나 기술들은 경로의존성을 탈피하면서도 변화에 따른 불편을 최소화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편, 똑같은 제도를 도입해도 나라마다 구성원들의 믿음과 신뢰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경제적 성과가 다르다.

실정 제도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의 상호작용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비공식 제도가 중요하다. 결국 장기적인 경제성장은 사회 구성원의 믿음, 규범, 공통된 편견과 같은 비공식 제도와 이를 반영한 정치, 경제 제도가 사회?경제적 변화에 얼마나 유연하고 바람직하게 변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여하튼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성숙한 제도를 바탕으로 경쟁력 있는 기술혁신과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증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위의 내용은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이라는 책에 기술된 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Douglas C. North)의 연구 성과를 요약해 놓은 것이다. 경제학적 논리성이나 타당성은 차치하더라도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 현행 제도의 실질을 결정하는 사회적 관행이나 관습 등은 우리 귀에도 익숙한 내용이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선진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진단할 때 자주 비교·언급되는 말이기도 하다. 진단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쉬워 보이지만 정책대안은 이해관계의 대립이나 계층간 갈등으로 합의를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 설령 합의가 되더라도 이도저도 아닌 조절된 제도로 결론이 나고 여전히 경로의존성은 잔존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어중간한 조절적 제도가 아니라 경로의존성을 파격적으로 탈피하는, 판을 뒤집을 만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됐다. 사회적 관행을 뿌리부터 뒤집을만한 영향력을 가진 ‘부정청탁금지법’이 그것이다.

경제에 대한 악영향을 걱정하는 소리부터 일부를 잡기 위해 너무 많은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다는 소리까지 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지만 대의명분은 이 모든 우려를 덮고도 남을 만해 누구도 공개적인 반박을 할 수가 없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이 법의 본래 취지가 현재의 관행에 불편함을 느끼는 공무원들을 해방하는 것에 있다고 했다. 접대나 음성적인 청탁으로 대표되는 종전의 소통구조가 정상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형식화시키는 것에 대해 분개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사례를 수도 없이 목격해 온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 법은 발전을 정체시키는 잘못된 사회적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것으로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선진사회로 가기 위한 사회적 자본 축적의 바로미터로 볼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만 사물을 볼 수 있다. 소설 나생문에서 보듯이 당사자의 처지에 따라 하나의 행위나 사건에 대한 해석도 다르고 하물며 기억조차도 다르다. 당연히 반발도 있고 반대도 있을 것이다. 부정청탁방지법이 시행되고 한달이 아직 지나지 않았지만 많은 변화가 벌써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왜곡된 가치의식과 뒷문문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사회적 자산인 신뢰와 공동사회의 가치합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방향성은 누구도 되돌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물결이 된 상황이다. 부디 실험적 법률로 끝나지 않고 뿌리깊게 내려 예전의 잘못된 경로의존성을 올바른 경로의존성으로 바꾸어 나갔으면 하는 것이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법제처 경제법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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