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정당하게 위임받지 못한 여성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부동산업계 근간 중 하나를 흔드는 판결이 나와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올해 1월부터 공인중개사 자격 없이 부동산 거래를 중개한 혐의로 기소된 ‘트러스트 부동산’ 공승배 대표(변호사)가 지난 7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부동산 중개와 법률자문 서비스를 분리해 변호사가 이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사실상 결론내렸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한 배심원 7명 중 4명은 무죄, 3명은 유죄 의견을 내 재판부가 배심원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판결 소식이 알려지자 공인중개사업계는 격앙했다. 공인중개사협회는 “판단력을 잃은 사법부의 판결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전국 36만 공인중개사와 100만 중개가족이 역량을 모두 동원해 총궐기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가 이처럼 강력하게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트러스트 부동산’과 가격 경쟁력에서 공인중개사가 절대 열세이기 때문이다. 속칭 ‘변호사 복덕방’으로 불리는 ‘트러스트 부동산’은 매매 거래금액이 2억5000만원(전·월세는 3억원) 미만이면 45만원, 그 이상이면 99만원을 받는 2단계 보수 체계다. 예를 들어 주택 가격이 10억원인 매물을 중개할 때 트러스트 부동산의 중개 보수는 99만원이다. 반면 공인중개사가 같은 매물을 중개하면 중개수수료(8억원 이상 0.9% 상한요율)가 최대 900만원으로 10배나 비싸다. ‘트러스트 부동산’이 현실화되고 그 수가 늘어나면 공인중개사들은 수수료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는 가뜩이나 침체된 부동산시장에서 수입이 줄어들고 있는 공인중개사들의 시름을 더 깊게 할 게 자명하다. 아마 배심원들도 영세 사업자 보호와 전문적 법률 서비스 제공 사이에서 고심했으리라 생각한다. 부동산 산업의 93.4%가 10인 이하의 소규모 중개법인이어서 ‘트러스트 부동산’이 합법화되면 골목상권이 직격탄을 맞는다. 

2심, 3심 결과를 기다려봐야 하지만 1심 판결만으로도 업계는 존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다만 이번 판결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업계도 변화하는 부동산 거래 시대상을 반영해 전문성을 더 높일 필요성이 명백해졌다. 공인중개사를 끼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소액 월세 중심이기는 하나 수수료를 아낄 수 있는 ‘직방’ 등과 같은 직거래가 인기를 끌고 있고 개인 간 거래(C2C) 플랫폼 ‘헬로마켓’과 부동산 앱 ‘두꺼비세상’ 등도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는 국토교통부가 개발한 ‘부동산 전자계약’ 시스템 사용을 부동산 직거래 계약자와 법무사에게도 허용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부동산 전자계약을 사용하면 공인중개사 없는 직거래가 가능하다. 필자의 부동산 매매 경험을 되짚어 봐도 공인중개사의 역할이 그렇게 컸던 것은 아니고 공인중개 사고에 대한 보험도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게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조직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남은 판결에 상관 없이 업계는 변화에 맞춰 직거래 회사와의 제휴, 변호사ㆍ법무사와 협업을 통한 전문성 강화 등 다양한 대비책을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장기적 생존을 담보할 것이라는 내부 자각이 서서히 터져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배성재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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