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선재길

겨울에만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꽃이 있다. 눈 소복이 내리는 날의 눈꽃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봄꽃은 싱그럽고 여름꽃은 화려하며 가을꽃은 화사하다면, 겨울꽃은 낭만적이다. 겨울 꽃놀이를 즐기러 강원도 평창으로 떠나보자. 

새하얀 눈이 내려앉은 세상은 어디든 아름답겠지만, 유독 눈과 궁합이 맞는 요소가 있다. 키 크고 묵직한 상록수가 그러하고, 속살을 드리워낸 산꼭대기가 그러할 터이고, 잔잔하게 가라앉은 산사가 그러하다. 평창에 위치한 오대산 선재길에 가면 이 모든 게 존재한다. 최근 눈이 많이 내린 덕에 한동안은 아름다운 설경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선재길은 천년고찰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숲길이다. 길이는 9km이며 대부분 평지 구간이라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걸을 수 있다. 1960년대 말 월정사와 상원사를 잇는 도로가 나기 전까지 스님과 신자들은 이 길을 통해 월정사와 상원사를 오갔다. 지금은 옛 정취와 청정 자연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일부러 걸어보는 산책 코스가 됐다.

월정사~상원사 눈부신 숲길 9km
산사 커피엔 얼었던 몸이 사르르

선재길 전 구간에는 빽빽하게 나무가 들어서 있고 계곡이 길과 함께 흘러간다. 신록이 우거지고 단풍이 아름다워 봄부터 가을까지 항상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선재길의 진정한 매력은 겨울에 빛을 발한다. 푸른 신록도, 울긋불긋한 단풍도 없지만 순백의 눈이 이 모든 걸 대신한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뒤덮인 숲길, 고요함 속에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만 울려 퍼진다. 여기에 졸졸졸 흘러가는 계곡물이 화음을 맞춘다. 얼음에 눈까지 덮여서 계곡물이 있는지 분간조차 안 되는데, 그 사이 사이 작은 구멍을 만들고 계곡은 쉴 새 없이 숨을 쉬고 있다. 숲길을 걷다 보면 중간 중간 목재 데크 길도 만난다. 섶다리와 돌다리, 출렁다리 등 여러 다리가 잔잔한 여정에 포인트가 되어주기도 한다. 키 큰 나무 위에서, 키 작은 조릿대 위에서 빛나는 눈꽃은 겨울 선재길에서 만나는 가장 어여쁜 꽃이다.

겨울날 선재길 산책이 매력적인 또 다른 이유는 그 길의 시작과 끝에 월정사와 상원사가 있다는 점이다. 고즈넉한 겨울 산사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전각 지붕과 마당에 눈이 소복이 쌓이면서 겨울 절집의 운치가 깊어진다. 국보 48호인 월정사 적광전 앞 팔각 구층석탑에 눈이 내려앉고 국보 36호인 상원사 동종을 보존하는 전각에도 눈발이 날린다. 고지대에 위치한 상원사에서는 설산을 감상할 수 있고, 월정사에서는 눈 덮인 낭만적인 전나무숲길을 걸어볼 수 있다.

월정사와 상원사가 반가운 이유는 또 있다. 따뜻하게 커피 한 잔 마실 근사한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월정사에는 카페 ‘난다나’가, 상원사에는 ‘카페마루’가 각각 방문객을 맞이한다. 두 곳 모두 훌륭한 전망을 제공한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겨울 풍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시간조차도 나른해지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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