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 오긴 오나 보다.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지역 이기주의와 밥그릇 싸움이 재연될 조짐이다. 마치 때를 기다린 듯, 못된 한국의 고질병이 다시 도진 것이다.

영남권 신공항을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했다.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김해신공항 추진이 확정된 마당에 부산 가덕도 신공항 유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지역 104개 단체가 참여한 신공항추진범시민운동본부는 2월16일 기자회견을 열어 “확장될 김해공항(김해신공항)을 영남권 국제관문공항으로 건설하지 않으면 가덕신공항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인호 부산시민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정부가 부산 시민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김해공항 확장 사업을 백지화하고 올해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가덕도 신공항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들은 정부가 김해신공항과 관련한 예비타당성 조사 과정에서 항공수요를 예상보다 낮게 책정하려 한다고 걸고 넘어졌다. 조사를 맡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신공항의 항공 수요를 연간 이용객 2500만명 수준으로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6월 김해공항 확장계획을 발표할 당시의 3800만명보다 1000만명 적은 것이다. KDI가 항공 수요를 줄여 잡았다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부는 대구공항 이전 문제도 쟁점화했다. 김해공항 확장에 4조2000억원이 소요되는데 대구공항 이전에는 7조2500억원이 든다고 비교하며 김해신공항이 ‘반쪽 공항’이라는 논리로 여론을 호도한다. 김해공항 확장은 활주로 1개가 증설되지만, 이전되는 대구공항에는 2개 이상의 활주로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비용이 더 드는 게 당연하다. 또 대구공항은 기본적으로 군 공항이기 때문에 필요 시설 등이 민간공항인 김해공항과 비교해 월등히 많다.

걱정된다. 이러다가 선거판이 본격화하면 영남권 신공항 재추진 카드를 꺼내드는 대선 후보가 정말로 나올 수도 있다 싶어서다.

정부가 지난해 새 입지가 아닌 김해신공항 확장을 확정지은 것은 지역갈등과 국론분열을 막은 ‘신의 한 수’로 평가됐다. 그런데 그 계획이 반년도 되지 않아 헌신짝처럼 내던져지고, 다시 지역이 두 편으로 갈려 쌈박질을 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해선 안 될 일이다.

정부 탓도 있다. 정부는 애초 김해신공항과 관련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지난해까지 완료하겠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 잡음이 들릴 것이고, 그러다 보면 김해신공항 사업 추진은 더 어려워질 뿐이다. 한시라도 서둘러야 한다.

선거 국면에는 정부가 대형 개발 사업 등과 관련된 계획을 공표하지 않은 것도 고려해야 한다. 최근 국토교통부는 2019년부터 도로의 지하와 지상 공간을 민간이 개발해 상가나 주택·편의시설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도로 공간의 입체적 활용을 통한 미래형 도시건설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도시의 융복합적 개발을 가로막는 도로 규제가 사라지고, 이와 관련된 신산업이 육성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 사업이 투기를 유발할 수 있고, 일부 지역에 대한 특혜성 정책이 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거 과정에서 정치적인 계산을 앞세운 세력에 의해 이들 사업이 엉뚱하게 이용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려스럽다.

정치의 계절이다. 조만간 각 후보들이 제시하는 공약이 홍수를 이룰 것이다. 대형 개발·국책 사업도 한두 개쯤씩은 후보마다 마련해 놓았을 터다.

국가의 리더가 되려는 분들께 부탁한다. 표 좀 더 얻기 위한 꼼수보다는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공약과 정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해 달라. 정치 공학으로 탄생한 공약은 결단코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우리 국민의 의식이 이제는 헛공약쯤 간단히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으니 말이다.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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