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벚꽃 대선이라 하고 다른 이는 장미 대선이라 한다. 정치와 꽃이라니. 꽃필 때 대통령 선거하게 된 일을 물으면 돌아올 답은 뻔하다. 누구든 최순실이나 국정농단, 불통, 세월호, 십상시를 벚꽃 대선의 주요인으로 손꼽을 것이다. 

헌데 정말 그것뿐일까. 시민들의 맘 속 밑바닥에 깔려 도도히 흘러온 분노를 빠뜨리진 말자. 국가, 정치로부터 푸대접을 받아 생긴 분노를 꼭 챙겨 기억해 둬야 한다. 형편없는 실력의 외교로 풍비박산난 자존심. 어설프게 손댄 역사교과서로 인한 답답함. 반인륜적 과거 만행도 눈감는 역행에 대한 부끄러움. 온갖 사회 문제를 여미지 못한 우왕좌왕의 안타까움. 오죽 화가 나면 제 사는 곳에 ‘헬’이란 접두어를 붙였을까. 제대로 시민 대접을 못 받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 없음을 깨달은 끝에 분노했고, 그 힘이 조기 대선을 꽃피게 했다.

어느 모로 보나 분노는 정당했고, 적절한 시간에 이뤄졌다. 그 분노가 없었다면 아직도 정치와 국가는 한복 치마 자락에 휩쓸려 숨겨졌을 거라 확신한다. 세월호는 갯벌에 쳐박혀 차고 짠 물만 먹고 있었을 게 뻔하다. 고령화, 인구절벽, 저성장, 불황은 언뜻 스쳐가는 가십에 불과했을 거다. 좌절하는 청년들에겐 더 많은 ‘노오력’의 슬로건만 던져질 것은 불문가지다. 분노는 그 적폐를 지적하고, 지우며 새 정치의 꽃망울 공간을 만들어냈다.

꽃 피는 시즌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의 슬로건은 뻔해졌다. 분노에 제대로 응답하는 일이다. 푸대접을 청산하고 대접하겠다는 공약을 꽃피우는 일이다. 그런 탓에 여느 대선과는 달리 생활밀착형 공약이 늘었다. 분노를 ‘보듬는’ 공약이 늘고, 큰소리 뻥뻥 치는 헛 공약은 줄어 보인다. 공약만 놓고 보면 대선의 풍경은 확연히 달라졌다. 푸대접을 기반한 분노가 새로운 정치판을 꽃 피운 공신이었음을 잊지는 말아야겠다.

달라진 대선 풍경에서 개발, 건설, 토건 담론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꽃잎 떨어지듯 사라졌다. 단골 메뉴이던 건설경기 부양을 누구도 입에 올리지 않는다. 그와 사촌뻘이던 개발, 토건, 사회간접자본, 주택 증설도 좀체 들을 수 없다. 신항만, 신공항, 신도시, 뉴타운, 고속도로, 간척사업 담론을 퍼지게 할 입질이 없진 않건만 눈길을 주는 후보는 없다. 대선을 하긴 하는 건가 묻고 싶을 정도로 건설계는 꽃이 져 버린 낯선 시간을 맞고 있다.

대통령 선거와 개발, 건설, 토건은 긴 시간 동안 끈끈한 가족급 인연을 누려왔다. 후보 시절 노태우는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 서해안 고속도로 공사를 약속했다. 김영삼은 매년 60만호의 주택을 짓겠다고 다짐했다. 노무현은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했다. 이명박의 공약은 불문가지다. 박근혜의 산악리조트, 동남권 신공항 건설도 요란스런 공약이었다. 

바다, 산, 강, 평지에 손대 살림살이 살리겠다는 약속엔 여야가 따로 없었다. 대선은 공약의 계절이었고, 대형 공사가 약속되는 그런 시즌을 꽤 오랫동안 살아왔다.

건설, 개발의 자리를 2017년 대선 공간에선 신참이 꿰찼다. 재생, 수리, 임대, 분배가 신참 주인공이다. 인구 절벽에다 고령화, 저성장, 과잉 공급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 셈이다. 부수며 새로 짓기 보단 현재를 고쳐서 삶을 더 편하게 하고, 디자인을 바꾸어서 보기에 좋게 하고, 새로운 전자 기술 내용으로 채워 간편화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10년 이상 된 건축물이 75%고, 30년 이상이 36%에 이른다는 통계를 대하다 보면 신참이 큰 자리를 꿰찬 일이 옳아 보인다. 내주는 것이 맞아 보인다. 이제 허물고 새로 짓는 일이 아닌 고쳐 쓰는 일이 사회적 조건에 맞춰보더라도 옳은 듯하다.

새 정치가 꽃망울을 맺듯 건설, 개발도 새 패러다임을 꽃피울 때다. 과거의 흔적을 모두 지워내는 불도저식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을 남기며, 기억과 추억의 재미도 살려주는 건설 개발을 모색할 때도 됐다. 

모바일로 무장한 주민의 디지털 삶에 부합하는 공간 창조의 책임도 챙겨야 할 시기가 왔다. 콘크리트 개발, 건설로 푸대접받던 때를 넘어 미학적 건설, 개발로 대접받게 도울 때가 온 것이다. 섬기며 대접하는 개발, 건설 패러다임으로의 진입은 정치 패러다임 변화보다 더 앞줄에 서야 할 사안이다. 개발, 건설이야말로 ‘진정 사람 살자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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