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의 대통령 후보 또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얼마나 될까. 인간적인 신뢰가 아닌 공약과 정책에 대한 신뢰 말이다.

당사자는 야속하겠지만 그들의 약속에 대한 믿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그동안 겪어본 대통령들이 공약을 말 그대로 ‘빌 공’(空)자 공약처럼 내다 버린 사례를 적잖이 목도했기 때문이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져 오면서 어김없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식 공약이 쏟아진다. 이런 공약은 그냥 ‘표 구걸하는 쇼’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어차피 공약은 당선된 뒤에 또 그럴듯한 이유 하나 둘러대고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면 되니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공약을 보자. 지지율 1위 후보니 국민이나 언론 등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파이가 큰 개발·부동산 공약만 따진다.

먼저, 그는 부동산 보유세 인상을 외쳤다. 현 0.79%에서 1%로 올리겠단다. 이렇게 늘어난 세수로 공공임대주택 100만 가구를 공급해 주거복지를 실현하겠다는 입장이다. 가계부채 총량관리제 도입도 약속했다. 언뜻 ‘규제’가 문 후보 부동산 공약의 큰 흐름으로 읽힌다.

4월9일 나온 ‘도시재생 뉴딜사업’은 방향이 조금 달라 보인다. 국가 재정을 풀어 뉴타운·재개발 사업이 중단된 전국 500여개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규제는 강화하되, 도시재생이라는 돌파구를 하나 뚫어 경제 회생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노림수로 보면 되겠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의 2배가 넘는 50조원 재원 마련이나, 과거 뉴타운이 여러 가지 부작용을 겪었던 사례 등을 생각하면 그의 공약은 현실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도시재생은 연 평균 100곳을 성사시킬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일도 아니다. 필자가 지방 도시의 구도심에서 2년 거주한 적이 있다. 역에서 내려 폐가가 즐비한 동네를 15분쯤 걸어가면 막 입주한 아파트 단지가 딱 하나 있었다. 그 아파트에 살면서 도심 재개발이 얼마나 황망한 일인지를 체험했다. 지금처럼 경기가 나쁜 때도 아니었다. 하지만, 재개발 3∼4개 구역 가운데 딱 하나만 성공해 아파트를 세웠고, 주변 2∼3개 구역은 을씨년스런 빈집만 남기고 중단됐다. 도심 재개발이 결과적으로 도심 슬럼화만 가속화한 것이다.

문 후보가 4월11일 부산·울산·창원을 돌며 발표한 ‘지역 비전’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문 후보는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정된 동남권 공항 정책과정을 검토하고, 적절한 경우 김해공항을 관문공항 기능으로 확장하겠다”고 했다. 지난 정부 내내 지역갈등과 국론분열을 야기했다 겨우 해결책을 찾은 신공항 카드가 다시 등장했다. 이 말을 들은 지인은 “PK(부산경남) 출신인 문 후보가 TK(대구경북) 사람들 마음에 불을 지르고 싶었나보다”고 평했다. 다른 지인은 “동남권 공항을 또 만든다는 거냐, 어쩌겠다는 거냐. 대선 후보가 말 장난한다”고 힐난했다.

우리는 역대 정권이 개발·부동산을 선거와 통치에 중요한 정책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발생한 부작용을 너무나 많이 겪었다. 더 이상 이런 정책이 선거와 권력 유지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짐짓 모른 척 다시 이런 패를 꺼내드는 후보에 대한 믿음이 안 가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나라가 파산 지경이다. 국가 부채 증가속도를 보면 안다. 벼랑으로 치닫는 상황을 보고도 유력 대선 후보가 이를 외면하는 것 같아 아쉽다. 고장 난 브레이크가 따로 없다. 앞으로 추가될 공약집에 또 얼마나 많은 포퓰리즘이 등장할까. 또 그 끝은 무엇일까 과연.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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