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이 왔는가 싶더니, 며칠 지나지도 않아 땀에 옷이 젖기 시작하는 초여름이 됐다. 이렇게 봄이란 계절은 쉽게, 빨리도 오는데 세계경제의 봄은 오는 속도가 한참 더디기만 하다. 세계경제에 봄이 와 교역량이 늘어나야 수출강국인 대한민국 경제도 살고 서민들의 생활도 웃음꽃을 피울텐데….

오랜 기간 고대했던 소망이 실현될 서광이 마침내 비치기 시작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해 1~2월 전세계 71개 주요 무역국들의 무역액(수출+수입액)이 4조8420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동기보다 9% 늘었다. 세계 1위 수출국인 중국의 수출액(3028억 달러)이 1년 전에 비해 4% 늘었고 미국(6.9%), 독일(3.5%), 일본(9.2%) 등 4대 경제대국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고무적인 것은 우리나라의 수출 증가율이 15.7%로 10대 수출국 중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10년이 다 돼서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는 분위기다.

세계경제 연동성이 높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무역량 증가는 반가운 일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 일부 영향을 받은 듯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소폭 상향 조정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달 초 전망치를 2.5%에서 2.6%, 한국개발연구원은 기존 2.4%에서 2.6%로 상향 조정했다. 국제통화기금도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전망치를 2.6%에서 2.7%로 더 올려 잡았다.

리먼브러더스발 금융위기는 충격과 여파에서 1929년 세계대공황과 많은 점이 닮았다. 공황 발발 직후 경제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돈이 돌지 않았고 기업 투자는 위축됐다. 당연히 일자리는 줄었고 거리엔 실업자가 넘쳐났다. 이런 흐름에 편승해 국가주의를 강조하고 이민족을 차별하는 극우 정치인들이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프랑스의 마린 르펜 등등. 고립주의를 부르짖는 이들의 인기가 치솟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자칫 세계대공황 이후 2차대전으로 사태가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졌고 지금도 그 우려는 여전하다.

극우 정치인의 득세는 궁핍한 삶에 찌들린 국민들의 감정을 받아주면서 이를 정치적 원동력으로 삼아 국수주의와 군국주의의 길로 이끌어 전쟁을 유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의 목적 중 하나에는 군수경제 활성화를 통한 경제 살리기도 포함돼 있다. 역사를 눈여겨본 사람들이라면 세계대공황 해소가 뉴딜정책과 같은 인위적인 일자리 창출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잘 안다. 미국의 경우 본격적인 경제 부흥은 2차대전 참전과 전승, 이후 승전국 간 세력 배분 과정에서 많은 이권을 챙기면서 국력을 신장시켰다.

극우주의는 당장은 힘든 현실을 잊게 하지만 독일, 일본, 이탈리아처럼 모두 패망으로 귀결됐다. 1세기도 안돼 최악의 불경기를 구제할 구원자로 트럼프를 선택한 미국과 극우주의자가 정권을 잡지 못한 유럽을 보며 역사에 대한 미묘한 감정마저 든다. 관광과 무역으로 세계가 과거보다 촘촘하게 연결되고 행정부의 일방적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입법 권력의 존재가 극단적 우경화를 막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들려온 세계 무역액 증가는 냉동고에 갇힌 대한민국 경제를 꺼낼 기회이자 한풀 꺾인 극우 정치인들의 생명력을 완전히 눌러버릴 수 있는 호기다. 축복을 주는 듯한 뉴스에 기분이 좋다. /배성재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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