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는 요리를 선보이기 전, 먼저 요리에 쓰일 식자재를 선별한다. 요리에 걸 맞는 품질과 가격의 재료가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셰프의 역량이 뛰어나다 한들 어설픈 재료로는 그저 그런 작품만 나올 뿐이다.

건설도 마찬가지다. 공사에 쓰이는 자재는 시공의 품질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중 하나다. 그럼에도 공공공사에서는 건설업체가 아닌 발주기관이 자재선택권을 쥐고 있다. 마치 똑같이 주어진 식자재로 똑같은 맛을 내는 프랜차이즈 식당 대우를 받는 것이 현재 건설업체가 처한 현실이다 .

“중소제조업체들에게 적정단가를 보장해주자”는 취지로 2007년 공사용자재 직접구매제도가 도입되면서 공공공사에는 특정 품목들에 한해 사급자재 대신 관급자재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소건설업계의 의견은 배제되고 중소제조업체들에 편향됐던 이 제도는 결국 자재지연 지급, 품질 저하, 하자책임 논란 등의 폐단을 낳았다.

공사에 쓰이는 자재의 공급이 늦어지면 이는 자연스레 공기 지연으로 귀결된다. 특히 자재공급 시간이 생명인 레미콘·아스콘의 경우 지연지급은 청천벽력과도 같다. 자재가 도착할 때까지 시공업체는 발만 동동 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늦장지급 행위는 지난해 5월, 계약이행 계획서 제출이 의무화된 이후로 잠잠해지나 싶었건만, 최근 레미콘·아스콘 업체가 관급자재를 ‘잡은 물고기’로 취급, 민간공사에 들어가는 자재부터 우선 처리한 사례가 조달청에 적발된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자재의 품질도 문제다.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듯, 어차피 자신에게 배정될 물량인데 굳이 품질향상에 투자할 필요가 있을까? 입찰에 참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품질만 유지하는 것이 이득일 텐데 말이다. 더 나아가 일부 품목에서는 단가를 올리기 위한 입찰담합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

이쯤이면 정부는 당초 나아가고자했던 방향이 이 길이 맞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재를 시공사가 아닌 발주기관이 선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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