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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매 칼럼> 신혼부부 울리는 ‘특별분양 소득기준’
  •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 승인 2017.12.11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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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근로자 평균소득의 120%는 ‘금수저’만을 위한 기준입니다. 월소득이 520만원도 넘지 못하는 부부가 6억원 이상 하는 서울 및 수도권의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을까요? 부모의 도움 없이 불가능한 것은 유치원생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서민주거 청사진 ‘주거복지로드맵’이 발표된 뒤 청와대 국민청원 코너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소득기준의 현실화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이런 비슷한 내용을 담은 청원이 여러 건 올라왔다. 정부가 고심해서 내놓은 대책이지만 부족한 부분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게다.

사실 이 문제는 하루이틀의 것이 아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획일적인 소득 한도 때문에 당장 급여는 적지만 부모가 자산이 많은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등 제도 취지와 달리 운영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가을 서울 강남권에서 분양가 11억원짜리 아파트에 당첨된 20대도 이런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내년 봄 결혼을 앞둔 A씨도 혜택에서 소외된 경우다. A씨 커플의 합산 세전 연봉은 7100만원을 조금 넘는다. 이 중에는 매달 나오는 인센티브 비슷한 급여가 있어 실제로는 연봉 7000만원이 안 되는 해도 있다. 받을 때도 있고 못 받을 때도 있는 몇 백만원 때문에 이 부부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자격이 없다. 새로 조성되는 신혼희망타운에도 입주할 수 없다. 주택담보 대출을 받자니 신혼부부 맞춤형 자격 조건도 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금리까지 올랐다. 가뜩이나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서 분양하는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도 올해 9월부터 청약가점제가 100% 시행되고 있어 무주택·청약저축 가입 기간과 부양가족이 적은 신혼부부에겐 ‘그림의 떡’이 돼 버렸다. A씨는 “이러니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는데도 내 집을 갖지 못한 월급쟁이가 수두룩한 것”이라고 푸념했다.

이같은 상황이 계속되는 건 정부의 책임이다. 사각지대를 보완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으니 말이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집값이 비싸고 대기 수요가 많은 서울 등의 신혼부부 특별공급 소득 기준을 올리면 된다는 것이다. 지역별로 기준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란 말이다.

지역마다 조건이 다르면 역차별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초저출산 국가인 한국의 실정을 감안하면 그 정도의 생채기는 감내해도 될 듯하다. 영국 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교수의 경고에 따르면 한국은 저출산·고령화로 사라지는 세계 최초 국가가 될 전망이다. 그야말로 발등의 불로 떨어진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하지 못하면 나라의 미래가 암울해질 판이다. 편안한 집 한 채 없는데, 또 새 집을 마련하려 해도 어설픈 규정 때문에 좌절하는데 어느 젊은이가 결혼을 하려 하고, 애를 낳고 키우려 하겠는가.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욱 평등하다”는 말이 나온다. 원래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였다. 인간을 몰아내고 농장을 점령한 돼지들이 정한 규율이었다. 권력과 특혜에 맛을 들인 독재자가 나중에 멋대로 바꿔버린 것이다. 지금 한국의 꼴이 딱 그 짝이다. 한국인은 언제부터인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구별된다. 자산가 부모 덕에 손쉽게 집을 장만하고 나중에 시세 차액까지 쏠쏠히 챙기는 ‘더욱 평등한’ 신혼부부가 더는 한국에서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취업에서 결혼과 출산으로, 저소득층에서 중산층으로 진입하는 ‘주거 사다리’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주거복지로드맵 구상이 공허할 뿐이다. 

나기천 세계일보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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